파워우먼 김행자 기아포드할부금융 대표이사 수석부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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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세계적 자동차회사인 미국 포드의 여성 전문경영인.지난 30년간 나이도,성(性)도 잊고 학교와 직장에서 최고를 달려온 파워우먼. 기아포드할부금융의 김행자(金幸子.53.미국명 킴송)대표이사 수석부사장은 포드사에서 파견한 미국 국적의 한국계 전문경영인이다.

이 회사는 기아와 포드가 각각 60%.40%의 지분으로 합작한 자본금 3백33억원 규모의 금융회사로 지난해 매출은 1천4백억원.지난해부터 일시불로 물건을 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금을 융통해주는 사업을 해온 회사다.

金부사장은 포드사의 특명(?)을 받고 코 크고 키 큰 미국 남자 임원 2명을 이끌고 한국을 떠난지 30년만에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66년 서강대 경제학과 조교생이던 22세의 김행자씨는'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여의도 국제공항에서 단돈 50달러를 갖고 미국으로 향한다.함경도 출신인 그녀의 부친은 6.25 발발후 남하해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던 가난한 봉급쟁이였다.어린 시절 모친이 세상을 떠나 그녀는 주부 역할은 물론 여동생과 남동생의 어머니 노릇까지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때 서강대 경제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녀의 능력을 아쉬워해 미국 유학을 지원해 준 사람이 지도교수 남덕우(南悳祐.73.전총리)박사.지금도 그녀는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南박사를 찾아간다.

22세의 동양여성 김행자에겐 미국 유학이 쉽지 않았다.그녀는 “그같은 환경이 남보다 덜 자고 덜 쓰면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기질을 길러주었다”고 회고한다.

68년 석사학위를 딴 그녀가 인생의 항로를 놓고 갈등할때 한국유학생 송윤근(宋根.64)박사가 나타나 결혼하게 된다.미국명'킴송'은 자신의 성에 남편의 성을 붙인 이름이다.

가정주부가 된 킴송은 남편이 디트로이트대 조교수가 되자 인근에 있는 웨인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다.이 기간중 그녀는 딸과 아들을 갖게 된다.

킴송씨는 75년 디트로이트 내셔널은행에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78년 제너럴 모터스(GM)사에 영업분석 책임자로 자리를 옮기면서'자동차 인생'을 걷게된다.

82년 그녀는 안식년(安息年)을 맞은 남편과 함께 GM사에 휴직계를 내고 도미(渡美) 16년만에 고국을 찾았다.휴직기간에도 그녀는 2년간 산업연구원(KIET)수석연구원.인하대 경제학과 부교수로 일했다.

84년 GM으로 돌아온 그녀는'남자가 하는 모든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현장 실무업무인 구매담당 책임자를 요청해 맡았다.“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하다.'여성'과'외국인'은 조직내에서 차별대우를 받는다.경영자의 꿈이 있었던 내겐 비상수단이 필요했다.” 경영자가 되기 위해 그녀가 이때부터 생산.구매.영업등 실무업무를 차례로 익힌 이유다.

그러나 그녀는 GM에서 대인관계로 큰 시련을 겪게 된다.일만 열심히 했던 그녀는 선후배.동료들과 어울리지 않게 되면서 대인관계에 금이 가 GM에서의 경영자 길에 차질을 빚게 된다.

88년 킴송씨는 자동차 부품회사인 윅스의 아시아 영업담당 책임자로 전직하게 되지만 이 회사는 1년뒤 다른 회사에 흡수합병된다.

89년 포드사에 입사한 그녀는 신사업 책임자.부품담당 책임자등을 역임하면서 중역으로 경영자의 꿈을 이룬다.포드 부품담당 책임자 시절엔 한국.중국.인도.멕시코등 4개국 시장을 개척했고 한국어.영어 외에 프랑스어.일본어.스페인어.중국어를 두루 구사할 수 있게 된다.

金부사장의 인생철학은'열심히 하자'다.그녀는 미국생활 30년간'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스스로 잊어버리고 뛰었다.

그래서 해가 기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언제나“'그래,오늘도 최선을 다했어(OK, I did my best)'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말한다.

金부사장은 여성 직장인들을 보면“미래라는 것은 주어지는게 아니고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열심히 사는 것이 최대의 무기”라고 충고한다.특히 그녀는“힘들어도 청소나 세탁을 직접 해라.남자보다 더 열심히 해야 회사나 가정에서 인정받는다”고 말한다.

金부사장은 연봉에 대해선“비밀이다.한국의 경영인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그녀는 미국에 자녀를 남기고 지난해부터 회사에서 마련해준 서울성북동 빌라에서 안식년을 맞은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이원호 기자

<사진설명>

기아와 포드가 합작으로 설립한 할부금융회사를 이끌고 있는 김행자씨.그녀는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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