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쌍용차가 사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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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6일 경기도 평택시 평택역 앞에 설치된 서명대엔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쌍용차 노조가 시작한 ‘먹튀 자본 상하이차 규탄과 쌍용자동차 정상화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쌍용차 노조 대의원 100여 명은 21일 평택시청 앞 도로 2.5㎞에서 릴레이 삼보일배 행진을 벌였다. 쌍용차 기술유출을 저지하고 구조조정을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와 별도로 19일엔 평택지역의 사회단체와 진보정당 등이 ‘뉴 평택 창조를 위한 시민연합’을 결성하고 22일 평택시청 앞 광장에서 1만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쌍용차 살리기 범시민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다. 가위 평택시 전체가 쌍용차 살리기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노조와 시민들의 열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은 뭔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 같아 보인다. 쌍용차를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이야 뭐랄 게 없다. 그러나 상하이차의 먹튀를 규탄하고, 구조조정을 반대하면 쌍용차가 과연 살아날 것인가. 쌍용차 노조가 삼보일배를 하고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면 정말 쌍용차가 회생하겠느냔 말이다.

 쌍용차는 유동성 위기에 몰린 끝에 지난 9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은 조만간 회생기회를 줄지, 아니면 청산절차를 진행할지를 결정할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 선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쌍용차 노조의 선택은 대주주인 상하이차를 상대로 한 법적 투쟁과 대시민 홍보전이었다. 노조는 상하이차가 기술만 빼내서 철수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중국 원정투쟁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이유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기술이 탐났기 때문이란 건 다 알려진 얘기다. 당시엔 상하이차 이외엔 쌍용차를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고 자금회수가 급한 채권은행은 매각작업을 서둘렀다. 상하이차는 예상대로 SUV 설계·생산 기술을 본사로 이전했다. 쌍용차 노조가 제기한 SUV 기술의 헐값 이전 시비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리됐고, 지금은 디젤하이브리드 엔진 기술의 무단 유출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만일 수사 결과 불법적인 기술유출이 있었다면 처벌과 함께 손해배상을 받으면 그만이다.

노조는 또 상하이차가 인수 당시 4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점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투자약속이 상하이차 본사의 자금을 들여오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국내 자동차회사를 인수한 GM이나 르노도 인수자금 이외에 본사에서 새로 자금을 들여오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했을 뿐이다. 쌍용차도 신차 개발과 연구개발 투자는 계속해 왔다. 다만 영업실적이 나빠서 투자 금액이 기대에 못 미쳤을 뿐이다.

이쯤 해서 논란을 한번 정리해 보자. 노조는 쌍용차가 오늘날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투자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헐값에 기술을 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말이 맞다면 상하이차가 자금을 더 들여오고 기술을 가져가지 않았으면 쌍용차가 잘나갔어야 옳다. 그러나 쌍용차의 기술은 상하이차가 가져갔든 않았든 그대로다. 기술유출 여부가 쌍용차의 기술경쟁력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쌍용차에 돈을 더 퍼부었다면 쌍용차가 더 잘 팔렸을까. 그렇다고 쌍용차의 수요가 더 늘어났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문제는 상하이차가 아니라 쌍용차 내부에 있다. 경쟁회사보다 성능과 디자인이 더 좋고, 값이 싼 차를 만들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게 자동차 업계의 냉엄한 현실이다. 쌍용차는 그 경쟁에서 뒤처졌고, 그 결과 자금난에 몰린 것이다. 그것이 경영 잘못 때문이든, 낮은 생산성 때문이든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뒤집지는 못한다. 기술유출과 관계없이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면 쌍용차는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시민 서명을 받는다고 없던 경쟁력이 갑자기 생기진 않는다. 구조조정은 한사코 반대하면서 무슨 수로 생산성을 높이겠는가.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