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주미대사 내정자 “한·미 FTA 소방수로 발탁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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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적 색채가 강한 자리인 주미대사에 경제관료 출신인 한덕수 전 총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자 외교통상부는 물론 한 전 총리의 친정 격인 경제부처에서도 의외의 인사라며 놀라워하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소방수로 발탁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무엇보다도 한 전 총리의 이력이 이를 입증한다. 통상관료로 1995년 한·미 자동차 협상과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협상 대표로 참여한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장을 맡는 등 ‘FTA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 내정자는) 앞선 정부에서 FTA 협상과 쇠고기 협상을 이끈 주인공”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 총리는 영어가 뛰어나고 버락 오바마 정부 경제팀의 주류인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그는 개성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대외 개방에는 대단한 뚝심을 보였다. 통상교섭본부장 시절인 98년 보란 듯이 자신의 관용차를 스웨덴제 ‘사브’로 바꿨다. 한국의 외제 자동차 수입장벽이 높다는 미국의 공세에 직접 대응한 것이다. 그해 7월엔 “스크린쿼터제가 오히려 한국 영화산업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고 말해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경제부총리 시절엔 “토끼는 한 평의 풀밭으로 만족하겠지만 사자는 넓은 초원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경제는 지금 넓은 들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내정자는 청와대의 인사 발표 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의회의 FTA 비준은 현재로선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며 “오바마 당선인과 같은 시절에 하버드대학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FTA가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과 막판까지 경합하다 결국 무게감 있는 총리급 카드로 결정된 점에 비춰 신임 대사에 기대하는 역할은 정무보다는 FTA를 포함한 경제 현안에 더 무게가 실려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예영준·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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