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리포트>일본.북한 식량지원 팽팽한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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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북(對北) 식량지원을 둘러싸고 일본과 북한 사이에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다.

식량난으로 다급해진 북한은 납치의혹,각성제 밀수사건 등을 이유로 일본이 좀처럼 식량을 원조해 주지 않자 그동안 외면했던'일본인처 문제'까지 먼저 들고나오는 유화적 태도를 보였다.일본 정부는 오랜 숙제인'일본인처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는 점에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반기면서도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조심스레 알아보고 있다.

이례적으로 한달동안 두번 열린 북한측과의 외무과장급 회담을 통해 얻은 일 외무성의 감촉은 좋지 않다.1천8백여명에 달하는 일본인처 전원의 일시귀국을 보장해 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무시한 채 계속'소규모'만 주장하는 북한측의 속셈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외무성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이 보낼 일본인처 규모가“많아야 20~30명 정도밖에 안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는“내부사정의 유출을 꺼리는 북한이 전원을 보낼 리 없다”며“김정일(金正日)동지의 은혜로 고향땅을 밟게 됐다고 말하게끔 잘 훈련된 몇 사람을 보내 생색을 낼게 분명하다”고 말했다.북한이 지난해 가을부터 평양과 원산등 대도시에 사는'충성심 많은'일본인처 약 50명에 대해 귀국 예행연습을 시키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정치권에서도 대북 식량원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이런 분위기 때문에 지난 22일에는 사민당의 주장으로 추진됐던 여당 방북단 파견이 중지되기까지 했다.

“일본인처들의 일시귀국을 허용할테니 쌀 50만을 보내달라”는 북한측의 요구는 명분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게 외무성의 일반적인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실마리를 찾게된 일본인처 문제가 틀어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딱 잘라 쌀을 못주겠다고도 말못하는게 일본 정부의 입장인 것같다.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의 참석한 이케다 유키히코(池田行彦)외상이 26일 유종하(柳宗夏)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인처 고향방문 외에 일본인 납치의혹과 각성제 밀수사건등에 대한 북한측의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는 한 식량지원은 물론 수교교섭 재개가 어렵다고 강경발언을 했지만 그뒤의 답답함은 숨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도쿄=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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