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자금난 루머와 굴뚝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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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려한대로 대기업 부도사태에 대한 채권금융기관간'부도방지협약'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원래 돈만 받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사양치 않는 것이 채권자의 공통된 심리다.'협약'아래에서 일단 부실징후기업으로 판정되면 당분간 채권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담보가 없는 제2금융권은 약간의 의심만 가도 자금을 회수하거나 대출연장을 거부하게 마련이다.

이러다 보니 자연'죄'없이 당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몇몇 중견기업의 자금악화설이 증시에 돌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이다.최근 부도난 삼립식품은 아직도'억울해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그럴 수도 있다.그러나 지금은 시장을 탓하기보다 오히려 '죄'가 정말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투자자 또는 금융기관이 루머를 루머로 흘려버리지 않고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까지 남편의 외도를 의심치 않는 아내는 평소 남편의 몸가짐을 믿기 때문이다.마찬가지로 기업도 평소 성실한 의사소통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투자자관계(IR)를 형성해두면 루머가 돌더라도 투자자들은'그럴리 없는데'하며 고개를 갸우뚱할테고 따라서 기업이 공시나 인터뷰등을 통해 해명하면'그러면 그렇지'하고 믿어줄 것이다.

사실 일반투자자는 기업의 의사결정과정 특히 투자행위와 자본조달 과정에 대해 공표된 사실 이상은 알지 못한다.기업에 대해 투자자가 아는 정보의 넓이와 깊이가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알고 있는 그것과 비교해 차이가 나면 날수록 투자자는 루머에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투자자가 기업 내부의 세밀한 정보까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경영상의 비밀은 일정기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기업에 이로울 것이다.문제는'정보의 비대칭'현상이 지나치면 기업을 자승자박할 수 있다는데 있다.기업이 억울하다고 외쳐도 투자자들이'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하면 도리가 없다.

IR는 홍보와 차원이 다르다.회장.사장 또는 재무담당 임원이 대규모 투자결정,자금상황,신제품개발등 기업의 재무상태와 영업실적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투자자 특히 증시에 영향력이 큰 기관투자가들에게 수시로 알리는 것이다.이때 거짓이나 과장은 금물이다.일시적 방편으로 실적 추정을 부풀리면 투자자들의 실망이 분노로 바뀌면서 적대감을 감추지 않을 것이다.우리 기업이 언제 이런 노력을 성실히 이행한 적이 있었던가.투명경영도 별것 아니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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