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규제개혁 잘 안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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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규제개혁의 기치는 높이 올라도 왜 실적은 지지부진한가.현 내각도 예외없이 규제개혁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강도 높게 밀어붙이고 있다.그러나 고건(高建)총리와 강경식(姜慶植)부총리라는 개혁마인드를 가진 환상적인 사령탑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개혁결과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하다.왜 누구나 세계화를 거론하고 정보화를 얘기할 때면 제일 중요한 과제가 규제혁파라고 총론적인 찬성을 하면서도 실제 각론에 들어가 규제를 없애기가 그렇게 힘든 것일까. 이제까지 우리는 그 책임을 관료에만 돌려왔다.관료계층이 기존의 이해구조를 온존시키기 위해 개혁을 의도적으로 좌초시켜왔다는 논리다.따라서 개혁을 하자면 규제라는 칼을 가진 공무원을 없애야 하고 그러자면 조직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다.그러나 과연 우리 기업과 국민은 진정으로 현재보다 정부기능을 축소시키면서까지 규제철폐를 진정으로 원하는가.바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속에 규제개혁 부진의 열쇠가 있다.

이 문제는 기업이나 일반국민등 민간부문에서 정부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이는 지난 30여년간 정부가 주도적으로 경제를 이끌어왔던 경제운영방식이라는 동전의 이면(裏面)이다.민간부문이 정부개입을 원해왔고 상당부분 규제에 기대 이익을 향유해온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굳이 표현하자면 기업이 규제에 너무 익숙해졌다고나 할까.이는 곧 규제로 인해 이익을 보는 계층이 우리 사회에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금 추진하려는 규제개혁의 결과 경제효율성을 늘릴 것이라는 주장은 다수국민에게 피부에 와닿지 않는,개인에게는 별 의미 없는 변화일 수 있다.그러나 규제의 결과 이득을 보는 소수는 막대한 이득을 보기 때문에 당연히 목소리를 높이고 소리도 요란하다.다른 각도에서 보면 규제개혁을 추진하려는 주체는 다수의 대중에게 왜 규제개혁이 중요한지 구체적으로 설득하기 어렵다.대개의 경우 규제개혁은 관계된 사람들에게 과격한 형태로 재산권의 이전을 동반한다.

때문에 총론적인 찬성을 하는 사람이라도 자기 이해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 어지간한 명분이 아니고는 개혁에 동참하려 하지 않는다.그래서 개혁을 추진하려는 관료가 있다 해도 심한 저항에 부닥치기가 보통이고 그렇게 되면 주춤거리지 않을 수 없다.따라서 규제개혁을 시도하려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사전에 정확히 정의된 내용을 준비하고 누가 어떻게 반대할지 예상해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규제가 경제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쉽게 고칠 수 없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예를 들어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규제를 수반한다.그런가 하면 규제혁파가 가져올 효과로 대기업집단이 엄청난 혜택을 볼 경우 재벌문제라는 사회정서에 부닥쳐 별로 진전되지 못한다.금융개혁이나 민영화와 관련된 규제개혁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해결되기 어려웠다.그런가 하면 환경의 유지와 삶의 질의 제고 그 자체는 성질상 규제로 점철돼 있다.우리는 아직도 크고 작은 사고만 터지면 정부는 무엇 하느냐고 대책을 요구한다.그것이 바로 규제를 요구하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결국 규제개혁을 하자면 앞으로의 한국경제를 어떻게 끌어가느냐,특히 정부와 시장의 적절한 기능배분에 관한 장기비전에서 출발해야 한다.이 주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려면 민간경제주체가 웬만한 일은 자율적으로 자기책임 아래 합리적 경제행위를 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다시 말해 정부에 시장개입을 가급적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경제적 자유를 부르짖으려면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규제개혁이 정 안된다면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해보지 않은 충격요법이 남아있다.그 것은 바로 국내시장을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개방하는 것이다.이제까지 상당히 진전됐다지만 아직도 중요 제조업과 많은 서비스업은 선진국 상품과 본격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그런 의미에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수입규제야말로 최후의 규제인 셈이다.기업이 만약 정부에 규제개혁을 요구하려면 개방의 결과도 감수하고 살아남도록 자기합리화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장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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