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고위직 기강잡기 나선 청와대 다음정권 줄대기 차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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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와대는 21일 검.경.국세청등 11개부처 사정(司正)실무자를 소집,'국가기강확립 실무협의회'를 열었다.지난해만 해도 공직자들에겐 서슬퍼런 느낌을 줬지만 한보.김현철(金賢哲)씨 사건이후 청와대가 힘이 빠져서인지 관심이 줄어든 회의다.

그런데 이날 회의에서 공직사회로선'뜨끔한 얘기'가 나왔다.고위공직자와 지방자치단체장 70여명을 비리혐의로 내사(內査)하고 있으며 그 속에는 장.차관급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고위공직자“누구 누구가”신한국당 또는 야당의 대선주자에게 줄을 대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주시해왔다.일부 장.차관들은 골치아픈 정책은 미루고 이미지 관리만 하고 있다는 동향보고도 올라왔다.

여기에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중앙정부의 말을 듣기는 커녕 내년 지방선거의 재선을 노려 주민동원 업적홍보,나눠주기식 예산집행등에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진 상황에서“신한국당이 경선에 본격 들어가기 전에 공직사회를 조여야할 판단이 내려진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가 말했다.

청와대는 사정기관을 동원해 대상자들의 비리혐의를 캐내 공직자들이 딴 생각을 못하게 만들 작정이다.여기에는 올 대선 때 야당출신 단체장들의 역(逆)관권선거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측면도 있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기존 입장마저 바꾼 인상이다.이전까지 고위공직자의 비리는 줄었는데 아랫물이 흐리다고 했지만,이날 문종수(文鐘洙)민정수석은“중.하위직은 괜찮은데 고위직이 문제”라고 수정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기세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정부안에서도 의견이 갈려 있다.이런 종류의 회의를 할때 마다'공직자 얼마를 내사하고 있다'는 식의 접근자세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지난해에도 2백명을 내사하고 있다고 했지만 실적은 크게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경제살리기를 金대통령의 임기마무리 과제로 삼고 있는 마당에 공직사회를 움츠리게 할 사정활동의 수위에 한계도 있다.

정부내 사정기관들간의 팀워크도“엉성한 상태”라고 관계자들은 시인한다.청와대는 사정의 주도권을 검찰에 넘긴지 오래다.이날 회의내용이 엄포로 끝날지,아니면 공직사회를 죌 계기가 될지는 두고봐야 겠지만 청와대안에서도 흐지부지될 공산을 우려하는 정도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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