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세계 조명 아시아영화 '인증' - 칸 영화제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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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올해 칸영화제는 작품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저조했다.예년 같으면 시상식 전에 이미 황금종려상 후보가 1~2개로 확실히 좁혀졌을텐데 올해는 끝까지 어떤 작품이 수상할지 오리무중이었다.뒤늦게 출품돼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체리의 맛'과 감독상을 받은 홍콩 왕자웨이(王家衛)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모두 영화제 종반에 상영된 작품들이다.올 칸영화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아시아영화의 강세다.사실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는 유럽영화 중심의 보수성으로 인해 아시아영화에 대해서는 인색한 편이었다.베를린영화제가 꾸준히 아시아감독들을 발굴하고 키워온 것에 비해 칸영화제는 상대적으로 문턱이 높았던 셈이다.

그런 칸영화제가 올해 아시아영화에 대거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야말로 아시아영화의 새로운 시각과 스타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탈리아의 거장 프란체스코 로시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마르코 벨로키오,오스트리아의 미카엘 하네케등 유명한 유럽감독들의 작품이 모두 실망을 안겨줬다.

게다가 프랑스감독이기 때문에 수상 가능성이 점쳐졌던 마티유 카소비츠의'암살자'는 잔인한 폭력성과 TV.광고등 매스미디어에 대한 격렬한 공격으로 기자시사회에서 야유를 받는등 격심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수상대열에서 떨어져 나갔다.

캐나다감독 아톰 에고이언의 '달콤한 내세'는 스타일상의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한 채 지나치게 철학적인 사변에 빠지는 바람에 그랑프리상 수상에 그쳤다.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작품들을 아시아영화와 유럽영화로 양분해 단순비교한다면 유럽작품들이 사회의 폭력성 고발에 집착하면서도 보스니아 내전.유대인 학살등 진부한 주제와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아시아영화들은 보다 휴머니스트적이고 인간내면의 탐구나 왕자웨이와 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추구등의 노력을 보여줬다.세계시장을 향해 노력해온 아시아영화가 칸영화제의 높은 벽을 무너뜨린 셈이다.

특히 일본영화가 황금종려상.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것은 전통적인 영화강국의 저력을 느끼게 했다.특히 지난 20여년간 일본영화의 침체를 초래한 지나친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움직임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칸=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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