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과외비 지수와 엥겔 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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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허기진 배를 움켜잡으며 경제발전의 초석을 쌓던 70년대 우리나라 소시민의 가계는 곤궁하기 짝이 없었다.전체 가계지출중 차지하는 음식물 비용인 엥겔계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문화비 지출은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문화인프라 또한 변변치 않고 보니 지금 같은 문화.레저 생활은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엥겔계수는 71년 47.6에서 96년 28.2로 떨어졌다.임금수준이 낮았던 70년대와 비교할 때 근로자 임금이 꽤 많이 올랐음을 보여준다.경제지표의 향상은 사회간접자본에도 영향을 미쳐 문화인프라의 확충을 촉진시켰다. 따라서 도시 근로자의 가계생활비중 문화비 지출도 당연히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점에 있다.나의 아내는 요즘 도시 근로자의 문화비 지출이 오히려 줄고 있다고 주장한다.사교육비 때문이란다.늘어난 과외비 부담만큼 문화비 지출이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엥겔계수가 높던 시절과 뭐 달라진게 있느냐고 하소연이다.

하긴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의 과외비가 총지출의 50%에 육박하고 있으니 일리 없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우리집의 경우 음식물 비용에 과외비를 더하면 총지출의 78%.나머지에서 문화비 지출이 이루어진다고 볼 때 문화생활의 여유는 옛날만 못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남들도 하니까 내 아이에게도 시킬 수밖에 없는 과외열풍에 초연한 학부모는 없다.학벌 위주의 교육풍토 속에서 펼쳐지는'과외전쟁'은 이제 소시민의 가계 뿐만 아니라 문화시장의 황폐화까지 초래한다.경제불황 탓이기도 하지만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드는 현상을 보면서 날로 늘어나는'과외비 지수'가 언젠가는 이 땅의 건전한 문화까지 좀먹는 괴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글 홍사종 정동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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