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버지' 잔잔한 감동 - 폭력. 섹스 난무속 관객에 어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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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아직도 영화를 보면서 눈물로 손수건을 적시는 감동이 가능한가. 우리 관객들은 폭력.섹스가 난무하는 자극적인 화면을 보며 웬만한 이상심리와 변태에는 놀라지도 않는 세기말의 피폐한 정서에 길들여지고 있다.

눈이 피로할 정도의 현란한 액션이나 세계적 스타가 나오지 않으면 차갑게 외면해버리는 것이 요즘 극장가의 풍경이다.그러나 지금 상영중인'아버지'는 이같은 세태에 정면으로 저항하며 극장가의 한켠을 지키고 있어 안쓰럽고도 대견하다.'아버지'는 지극히 전통적인 화면으로 삶의 원초적 관계인 가정과 인간애를 온몸으로 느끼는 우리식 정서의 특성을 그대로 표출시키고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가장의 고뇌와 가족들의 화해.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영화'아버지'는 원작이 베스트셀러 소설이라는 것과 상관없이 그동안 극장 관람을 연례행사 정도로 생각해왔던 우리 영화의 잠재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오랜만에 부부.가족 단위의 관객층을 형성하는 작품인 셈이다.

박근형.장미희등 중견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장길수 감독의 안정된 연출이 잘 알려진 내용이더라도 충분히 가슴찡한 장면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병색이 짙어지는 아버지의 초상에는 앞만 보고 달려오다 누적시켜온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나며 바쁜 일상 속에서 저도 모르게 깃들인 오해와 갈등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준다.'아버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다.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한 가족의 슬픔을 보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가족에 대해 새삼 생각하고 있다.'아버지'는 영화에 감동의 힘이 여전히 존재함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극중 부부로 나오는 박근형과 장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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