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기섭씨 구속이 남기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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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안기부 전운영차장 김기섭(金己燮)씨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이미 청문회와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일부 드러났듯이 그는 단순히 영장에 기록된 돈문제뿐 아니라 안기부 직책을 이용해 광범한 월권.위법행위를 저질러 왔다.그가 김현철(金賢哲)씨 비리의 매개역할을 해온 것도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국가의 중요 정보를 총괄하는 중추신경에 해당하는 기관의 최고위급 인사가 대통령 아들이라는 한 개인의 대리인 역할을 하며 국정을 농단해온데 대해 개탄한다.안기부라는 기관은 그 역할의 중요성 만큼 그에 따른 철저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곳이다.그 기관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검증도 받지 않은 인물을 전리품 배분하듯 요직에 앉힐 때부터 문제는 태동됐다.오늘의 사태는 그러한 무원칙한 인사를 한 대가요 결과다.

우리는 金씨 사건을 계기로 안기부의 기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사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각종 정치공작을 도맡아온 폐해로 안기부는 국내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정파나 정권의 이익을 떠나 국가의 안위를 위해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할 기관이다.그 중요성 만큼 철저한 기강이 요구되는 곳이기도 하다.그러나 金씨는 이러한 국가기관의 자리를 사적인 권력의 도구로 이용해 왔다.이러한 金씨의 일탈행위가 제재없이 4년간 계속될 수 있었다는 것은 안기부가 얼마나 권력에 취약한 상태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따라서 안기부는 이번 사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 들지 말고 새롭게 태어나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안기부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돼 국가의 중추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부장이하 전직원이 과거 권력기관 행세를 하던 때와는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권력을 가진 측도 이를 사유물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전문기관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이미 청문회 등에서도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아직 안기부 등에 그와 현철씨의 인맥이 상존해 있다면 이 기회에 정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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