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경영일기>손길승 SK텔레콤 부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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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어디에서나 새로운 탄생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이번 SK 텔레콤의 기업이미지통합(CI) 재정립 과정에서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나의 CI재정립을 통한 변화의지에 여러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사실 그동안 한국이동통신이라는 이름으로 누려오던 많은 이점들을 포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그러나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고,또한 지금이 바로 변화의 적기라는 확신이 있었다.

기업의'변화'에 있어서는 기회포착이 중요하다.그 기회는 너무 늦어도 안되고,빨라도 안된다.변화가 너무 늦었다면 변화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고,너무 빠르면 오히려 의도와 다른 반작용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변화의 적기는 바로 가장 힘든 난관을 목전에 두었을 때다.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바뀔 때 신속하게 변신해온 기업들만이 오늘날 일류수준을 유지하며 성장,발전해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SK 텔레콤의 CI변경은 정보통신기업간의 멀리뛰기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는 준비운동으로 볼 수 있다.현재 정보통신시장은 CT-2.PCS등 신규통신사업자가 계속 진입하고 있고,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시장개방으로 세계적 수준의 거대 통신사업자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갈 것이 분명하다.공기업으로 시작해 설립 후 약 11년동안 독점적 지위를 향유하던 우리 회사에 한마디로 위기상황이 닥친 것이다.내가 97년을 변화의 적기로 판단한 까닭이 바로 이런 위기에 대한 인식에서 였다.앞으로 가장 치열할 경쟁을 앞두고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선도하기 위해 위기를 변신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꼭 잊지말아야 할 것이 있다.그것은 변화가 겉으로 보여주기만을 위한 변화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외모만 세계일류로 바뀌었다고 세계일류가 될 수는 없다.먼저 구성원의 마음가짐이 변하고,이것이 행동의 변화로 표현될 때,고객이 우리의 변화를 체감하고 인정해주는 것이다.이를 위해 우리는 고객의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파격적이고도 위험한 광고를 내보내었다.만약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 우리회사는 고객의 신뢰를 잃게될 것이며,이는 경쟁에서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하지만 나는 우리 구성원의 실제적 변화를 고객들에게 약속하기 위해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솔직함을 택했다.이제는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만이 남았을 뿐이다.

올 3월 한국이동통신은 SK 텔레콤이란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다.글로벌리제이션시대에 세계일류 종합정보통신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얼굴로 새단장 한 것이다.과거 우리가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넘어가며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나쁜 점은 구사명(舊社名)과 함께 지워버리고,좋은 점만을 모체로 해 신사명(新社名)이 가진 새로운 비전을 더해 다시 시작한다.

사람은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를 동시에 받지만 조직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그래서 사람은 백년을 채 못살지만 조직은 수백년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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