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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렴정치회고록>13. 박정희 대통령의 서해5도 死守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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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황장엽(黃長燁)전북한 노동당비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북한의 섬뜩한 전쟁준비 얘기를 들으면 나의 기억은 남북한의 긴장이 한껏 고조되었던 70년대로 달려간다.세월이 많이 흘러 사람들의 실감이 약해졌지만 68년이후 북한의 무력도발은 실로 걱정스럽고 위협적인 것이었다.

북한의 특수부대와 해군은 여러 전선에서 우리와 충돌했다.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서쪽 영해(領海)의 최북단에 위치한 5개 도서에서는 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5개 섬은 백령도를 비롯한 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다.

72년에 들어서자 북한은 50척이상의 경비정을 투입해 서해 5도에 도발을 집중시켰다.북한함정은 북방경비한계선을 2백19회나 침범했고 한국 영해에 들어온 것만 11회였다.73년 7월27일에는 백령도 근해에서 북한 경비정 4척이 우리 어선 1척을 격침시켰다.

북한은 73년 12월 군사정전위에서 이런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5개 섬이 유엔군사령관의 관할아래 있는 것을 인정한다.그러나 섬주변의 해역은 휴전협정에 따라 북한의 영해다.여기를 통과하는 모든 선박은 북한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앞으로 검문검색을 실시하겠다.” 북한의 공갈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북한은 서해에 함대사령부를 새로 창설해놓고 있었으며 잠수함과 유도탄을 발사할 수 있는 함정.어뢰정을 배치했다.북한의 전함은 함대함(艦對艦) 스티크미사일을 장착했는데 우리 해군에는 그런 미사일을 탑재한 함정이 1척도 없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미국측에 미국이 개발한 함대함 하푼미사일 판매를 강력히 요청했으나 미국은 쉽사리 응하지 않았다.

미국은“미국함정에 배치하고난 후 2~3년이 지나야 한국에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육지와 서해5도 사이를 왕래하는 배를 엄호하기 위해 공군과 구축함까지 동원해야 했다.

그러던중 드디어 일이 터졌다.74년 2월15일 백령도 근처 공해상에서 조업중이던 홍어잡이 어선 1척(선원 12명)이 북한고속정에 의해 격침되고 또 1척(선원 13명)은 납북되었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즉각 서종철(徐鐘喆)국방장관.한신(韓信)합참의장과 육군.해군참모총장을 불렀다.朴대통령은“韓장군이 직접 백령도에 가서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시오.북한이 침공할 경우를 생각해 지형지물도 살펴 어떻게 하면 방비책을 세울 수 있을지 보고하시오”라고 지시했다.

韓의장은 서해5도로 날아갔다.스틸웰 유엔군사령관도 같이 갔다.韓의장이 돌아온후 朴대통령과 군수뇌부는'서해5도 사수(死守)작전'을 세웠다.

한.미연합군은 이들 섬의 경비를 위해 예비군은 물론 학도호국단까지 M16으로 무장시켰다.당시는 국군 현역병도 구식인 M1소총을 신식 M16으로 채 바꾸지 못한 때였다.

朴대통령은 특별히“못쓰게 된 탱크에서 포를 뜯어다 해안포로 설치하라.그 위력으로 북한상륙부대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시했다.

섬 사수를 위한 대책은 군인뿐만 아니었다.朴대통령은 전주민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요새를 건설하고 요새안에 주민이 몇달동안 버틸 수 있는 식량도 비축하도록 했다.그리고 朴대통령은 서해5도의 장병과 주민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만일 북한군이 상륙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항전하라.육.해.공군이 총력을 다해 신속히 탈환할 것이니 1주일만 버텨라.” 무엇보다 중요한 대책은 북한고속정을 격침할 수 있는 함대함 미사일을 구입하는 일이었다.朴대통령은“미국이 팔지 않겠다고 하니 할 수 없다.나라에 돈이 부족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좋은 미사일을 빨리 사자”고 제안했다.

군에서는 프랑스제 엑조세미사일과 이스라엘이 만든 가브리엘미사일로 대상을 압축했다.엑조세는 후일 포클랜드해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영국함정을 격침시킬 때 사용해 유명해진 미사일이다.

朴대통령은 훨씬 비싼 엑조세를 선택했다.구축함은 물론 항공모함까지 타격할 수 있는 그 위력을 높이 산 것이다.엑조세를 들여오자마자 朴대통령은 대한해협 바다위에서 시사회(試射會)를 실시했다.바람이 몹시 불어 朴대통령과 군수뇌부가 탄 구축함은 매우 흔들렸다.

우리의 눈앞에서 한국해군의 고속정이 엑조세를 발사했다.엑조세는 화염을 뿜으며 날아가 모조물로 제작된 북한고속정을 일순간에 바다에 가라앉혔다.

우리가 엑조세를 사들이자 미국은 태도를 바꿔 서둘러 하푼미사일을 우리에게 팔았다.우리 해군함정이 북한의 스티크보다 성능이 월등한 엑조세와 하푼으로 무장하자 북한은 서해5도 해역은 물론 동해 군사분계해역에서도 감히 우리 어선을 납치하려는 시도를 더이상 하지 못했다.

이무렵 국민은 적극적으로 방위성금을 내기 시작했다.언론계에서도 모금에 앞장섰다.74년 10개월간 64억5천만원이 모금됐다.75년에도 계속돼 11월말까지 성금은 1백61억3천만원에 이르렀다.이 돈이 초기 율곡사업(방위력증강사업)의 재원이 된 것이다. 정리=김진 기자

<사진설명>

75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해군의 기동훈련을 망원경으로 참관하고 있다.7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 근처에서 우리 어선을 격침하는등 해상 도발도 자행했다.朴대통령은 서해 5도 사수 전략을 세우고 섬의 요새화를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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