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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비타민] 고장차 도우려 세워둔 차 사고 … 운전자 책임 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2002년 9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경남 진주시 지점에서 이모씨 차량의 타이어가 펑크 났다. 이씨의 차량은 편도 2차로에서 1·2차로에 걸쳐 9시 방향으로 멈춰섰다. 사고 지점은 도로가 오른쪽으로 휘는 구간이었다.

뒤따라오던 박모씨와 황모씨는 이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사고 지점 30m 전방에 박씨·황씨 순서로 차량을 정차했다. 그 뒤를 따라오던 김모씨는 이씨 차량 뒤쪽에 비상등을 켜고 정차했다.

그런데 화물차량을 몰고 오던 도모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김씨 차량을 들이받으면서 정차해 있던 차량 4대 모두가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김씨 차량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뒤집히면서 동승자가 사망하고 김씨 자신은 하반신이 마비됐다. 맨 앞에 있던 차량을 제외한 차들의 탑승자 7명이 부상했다.

화물차 운전자 도씨가 속한 전국화물차운송사업연합회는 손해배상으로 피해자들에게 총 9억1800여만원을 지급했다. 연합회는 그러나 “앞쪽에 있던 박씨와 황씨는 고속도로상에서 정차하면 이런 연쇄 추돌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이씨 차량 바로 앞에 정차해 손해를 확대시켰다”며 이들의 보험사를 상대로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는 연합회 측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자동차 운전자는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일반적인 의무가 있지만 일반 의무는 사고 당시의 제반 사정에 비춰 수정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박·황씨가 멀리 떨어져 정차했을 때 추가 피해가 줄어들었을 가능성보다 구조 행위를 하지 않았을 때의 사고 발생 가능성이 훨씬 컸다”고 판단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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