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리스트>미래영상연구소 정근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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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영화보는데 훈련이 필요하다? 수긍할 만할까.극장가서,혹은 비디오 틀어놓고 앉아만 있으면 되는거 아닌가.졸립고 재미없으면 안보면 그만이고.한술 더떠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라면 폭력과 섹스로 악영향을 미치는 그깟 영화들 만드는 걸 막지 못할 바에야 아예 못보게 하겠다고 마음먹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욕설이나 비속어가 많다고 벙어리·귀머거리로 살 수는 없는 일.문제는 이 ‘말’을 제대로 쓰도록 가르치는데 있다는 것이 미래영상연구소장 정근원(45·사진)씨의 생각이다.

“다음 세기는 모든 정보가 영상화를 전제로 만들어지는 사회가 될 겁니다.영상이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는 거죠.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은 영상을 만드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겁니다.누구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컴퓨터로 직접 편집하고 인터넷같은데 띄울 수 있는 거죠.”

잠깐 상상을 해보자. 삐삐 메시지 하나에도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하는 요즘 신세대들의 감각이라면 미래에 상용화될 비디오 전화에는 얼마나 기발한 부재중 메시지가 남겨질까.학교에서는 ‘나의 여름방학’이란 주제로 원고지 대신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과제물을 제출하도록 할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정규교과나 특별활동에 영상교육이 포함돼 있습니다.일반수업에서 학습주제와 관련된 15∼20분짜리 비디오를 틀어주고 토론을 하는 것은 물론 청소년 스스로 생각하는 청소년문제를 주제로 직접 영상물을 촬영·제작하기도 합니다.국내에서는 학습용 비디오래봤자 영어교재가 대부분이지만요.”

눈만 뜨면 텔레비전·비디오·컴퓨터같은 영상물에 파묻히는 요즘 아이들은 사실 학교에서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영상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다.문자언어와 관련된 왼쪽 뇌의 활동이 분석적·논리적·이성적·시간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라면 영상언어와 관련된 오른쪽 뇌는 통합적·직관적·감성적·공간적인 정보처리에 능숙하다는 것.자연 이들 영상언어세대는 감각적이고 표피적이란 평을 듣는다.

그러나 영상언어의 대두는 단순히 세대간의 유행 차이는 아니다.문자언어보다 암시와 함축으로 주관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영상언어가 인류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 정씨의 분석이다.그가 “이념보다는 생각이,생각보다는 느낌이 존재에 훨씬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라는 티베트불교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데올로기보다는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관심이 한결 높은 시대. 그래서 사람들은 ‘유부남과 유부녀의 사랑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드라마를 보면서 유부녀의 액세서리와 유부남의 선물포장 방식을 주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강대 신방과를 나온 정씨가 프랑스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것이 지난 91년.현재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올 7월말 서울에서 열릴 ‘제2회 어린이·청소년 영화제’준비에 짬을 내고 있다. 여기서는 한국을 포함,전세계 34개국의 아이들이 직접 만든 영화를 상영하고,한켠에서는 영화제작을 실습하는 캠프도 연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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