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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어루만져줄 엄마가 필요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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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엄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정겹고 그리운 이 말이 요즘 문학시장의 화제다. 장편소설『엄마를 부탁해』가 출간 두 달만에 20여만부나 팔렸다. 이 힘든 시대를 위로해줄 엄마 같은 존재가 그만큼 그립다는 얘기다. 10여년 전 경제위기 때는 소설『아버지』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중앙SUNDAY가 불황이 불러낸 엄마, 그리고 아버지의 특징을 짚는다.『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아버지』의 김정현 작가도 만났다.

지난 연말 중앙SUNDAY는 서울광장을 지나는 시민 102명에게 ‘행복’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물었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가족’을 첫손으로 꼽았다. 안 그래도 추운 겨울, 세계적 경제위기로 더욱 마음이 움츠러드는 때다. 마음을 받아주고 위로해 줄 이 누군가. 첫울음을 터뜨렸던 시절부터 조건 없이 우리를 품어 주었던 ‘엄마’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시대다. 10여 년 전 경제위기 때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엄마가 돌아왔다. 무한한 헌신과 희생,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인 엄마가 지치고 낙담한 이 시대 사람들을 위로하는 키워드로 돌아왔다. 작가 신경숙씨의 장편소설『엄마를 부탁해』는 일평생 가족을 보살펴 온 칠십대 엄마의 이야기다. 세월과 기억의 저편에 묻어 두었던 전통적 엄마의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 불러냈다.

독자의 반응이 뜨겁다. 10만 부만 넘어도 대형 베스트셀러로 기록되는 요즘 문학시장에서 벌써 20만 부 넘게 팔렸다. 출간 두 달여 만이다. ‘엄마가 서울역에서 실종된 뒤에야 가족이 저마다의 기억으로 엄마의 삶을 돌아보는’ 줄거리다. 다들 엄마를 잘 아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미처 몰랐던 엄마의 면면이 드러나면서 진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안겨준다.

10여 년 전의 경제위기 때는 ‘아버지’가 있었다. 1996년 김정현씨의 소설『아버지』는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아버지가 가족 몰래 외로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줄거리다. 소설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고개 숙인 아버지’, 즉 각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당한 중장년층의 비애를 대변하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고도성장기의 주역으로 활약하다 대거 퇴출당한 아버지들을 보는 당시의 사회적 시선과 비슷했다. 소설은 삽시간에 160만 부나 팔렸다. 영화·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 ‘아버지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 ‘엄마’를 반기는 심리 역시 경제위기와 연관 짓는 시각이 많다. 경희대 최혜실 교수는 “엄마가 상징하는 유년기의 평온함으로 돌아가 위로를 얻고 싶은 마음이 이 힘든 시기와 맞아떨어졌다”면서 “요나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이라고 했다. 요나 콤플렉스는 현실에서 벗어나 엄마 배 속으로 돌아가려는 퇴행적 심리를 뜻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요나가 고래 배 속에 갇혔던 것에 빗댄 말이다.

서울대 김윤식 명예교수는 “가족 해체의 시대에 가족소설로 후퇴하는 것은 문학적으로 불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신춘문예 응모작들도 실험성이 사라지고 과거의 소박한 이야기로 돌아갔다”며 “외환위기 때나 지금이나 정상이 아닌 상황이라는 점이 이런 현상의 의미”라고 말했다.

명지대 신수정 교수는 다른 견해다. “아버지와 엄마는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아버지가 강력한 권위체계를 상징하는 반면, 엄마는 그 바깥에 머물러 온 약자”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엄마를 통해 위안과 위로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희생해 온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을 불러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런 접점에 있는 작품이다. 과거의 어머니상을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엄마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점에서는 지난해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와도 맞닿는다.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에서 엄마를 연기했던 배우 김혜자씨는 현재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찍고 있다. 철부지 아들을 살인죄에서 구하기 위해 세상과 혼자 싸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이 힘든 시대가 다시 불러낸 엄마의 위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하다.

이후남 기자

불황을 어루만져줄 엄마가 필요해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20만 부 팔린 까닭은

“늘 배려받지 못하는 약자, 엄마에게 바치는 헌사”
2008년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작가 신경숙(46)씨의 신작 장편 『엄마를 부탁해』는 오묘하고도 영리한 작품이다. 헌신과 희생으로 일평생 가족을 돌봐온 엄마의 낯익은 모습을 복원해 절절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안겨 준다. 그러면서 이 엄마 역시 위로하고 보살펴줄 엄마가 필요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한다. 장성한 자식들과 남편을 둔 칠순 노모가 서울역에서 실종되자, 가족이 각자의 시선으로 엄마를 돌아보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그 역시 70대 엄마의 딸인 신씨는 인터뷰에서 실제 엄마와 소설 속 엄마에 대한 얘기를 고루 들려줬다.

-딸들에게 엄마는 복합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그 보살핌을 받고 살아왔으면서도 대개 엄마처럼 살기는 싫어하던데.
“그게 이 소설을 쓰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엄마들은 ‘나처럼 살지 말라’고, 딸들은 ‘엄마처럼 안 살래’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를, 우리를 있게 한 건 엄마다. 그 노고·시련·고난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한 번도 제대로 배려받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간 느낌이다. 단편이나 수필 말고 엄마를 다룬 장편이 많지 않다. 현실에서도, 문학에서도 엄마는 주변부다. 엄마의 자리를 한번쯤 문학으로 짚어주고 싶었다.”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다.
“처음 제목은 ‘어머니를 부탁해’였다. 잘 쓸 수가 없었다. 오래전부터 구상한 이야기인데도, 연재를 하기로 하고 세 번이나 펑크를 냈다. 섬광처럼 ‘엄마’라는 말이 떠오르고 나서야 닫힌 문이 열린 것처럼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일찍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편지를 쓸 때는 ‘어머니’라고 했지만 만나면 반가움에 ‘엄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가 훨씬 더 근원에 밀착하는 말인가 보다. 그렇게 ‘엄마’의 힘으로 엄마 얘기를 썼다.”

-오래전이라면.
“내가 15세 때 엄마랑 밤차를 타고 서울에 오는 길이었다. 낮에 그해 마지막 모내기를 마치고 왔다. 캄캄한 차창에 엄마와 내 모습이 비치는데, 엄마가 졸고 계셨다. 내가 쳐다보면 안 졸던 것처럼 몸을 세웠지만, 이내 다시 졸았다. 그때 내가 나중에 작가가 되면 우리 엄마한테 바치는 헌사를 써보리라 생각했다. 그 약속을 30년도 넘어서 지키게 된 셈이다.”(전북 정읍이 고향인 작가는 이후로 큰오빠와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다. 『엄마를 부탁해』의 큰딸과 비슷하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선배 작가가 “그래, 신경숙씨 어머니는 찾았느냐”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소설 속의 큰딸 역시 작가다. 누구든 작가 본인을 연상할 텐데, 그렇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게 두렵지 않았나.
“두려웠지만 이길 수 있었다. 작품을 쓰면서 거대한 장벽에 마주한 느낌이 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소설과 상관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 나중에는 노동으로 마모돼서 뼈마디가 굵어진 엄마의 두툼한 손이 내 손을 감싸고 같이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가 됐어야 할 사람은 우리 엄마다. 사람 얘기를 어투를 살려 전해줄 때 우리 엄마는 생기가 넘친다. 엄마가 겪고 들려준 것들이 내 이야기의 원천이다. 이 소설에 내 엄마의 자전적인 요소도 있으되, 그게 다는 아니다. 그러니 딸이 작가라는 걸 굳이 피해가야 할까 싶었다.”

-소설의 각 장은 큰딸-큰아들-남편-그리고 엄마 자신으로 시점이 바뀌는데, 전체적으로 서술의 주어는 엄마인 것 같다.
“엄마이자, 인간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기도 하다. 딸은 ‘너’, 아들은 ‘그’, 남편은 ‘당신’으로 지칭했다. 엄마만이 ‘나’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의도했다. 요즘의 엄마들은 나은 편이지만, 앞 세대의 엄마들은 밀어닥치는 상황이 너무 어려워 ‘나’로 사는 시간을 생각할 새도 없었다. 소설에도 썼듯,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배 속에 열 달간 웅크리고 있다가 울면서 태어났고, 배내옷을 입고, 아장아장 걸음을 걷고, 소녀이고 처녀였던 사람이다. 지금 젊은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들은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였던 걸로만 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엄마 마음속도 이러저러한 욕망, 좌절된 꿈, 그리움으로 이뤄진 세계라는 걸 그리고 싶었다.”

-엄마가 실종된 사건으로 시작하는 추리소설 기법을 빌려 왔다.
“나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다. 다만 엄마 이야기를 쓰려면 현대적이고, 세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잘 안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진부하게 여기기 쉽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첫 문장이 탄생하자, 그 강력한 힘에 이끌렸을 뿐 추리를 의도한 건 아니다. 왜 엄마를 안 찾아 주느냐는 항의 섞인 독자의 반응도 있었다. 그건 문학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소설을 보고 엄마도 배내옷을 입던 시절이 있고,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는 걸 안다면 그게 엄마를 찾는 게 아닐까.”

-독자 리뷰를 읽나.
“이번에는 그렇게 됐다. 어떤 독자가 ‘엄마를 찾은 지 하루째다’라고 쓴 글을 읽은 게 시작이 됐다. 그런데 독자들이 쓰는 내용의 대부분은 내 작품이 아니라 자신과 엄마의 관계다. 그걸 읽으면서 나도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된 것 같았다. 작품을 최종 완성시키는 사람은 독자라는 말대로다.”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많다.
“쓰면서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처음에는 그런 말에 당황했다. 행복하라고 쓴 책인데. 슬퍼서만이 아니라 정화되고, 치유될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나. 그런 눈물이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남진우(남편·문학평론가)씨도 울었다고 하더라. 아마도 엄마한테 미안해서들 그러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엄마한테 ‘내가 이 다음에 크면’ 하고 약속 안 한 사람이 없지만, 또 그 약속을 지킨 사람도 거의 없다. 엄마한테 미안해해야 할 상황에도 오히려 당신들이 미안해하는 게 엄마다.”

-가족이라는 게 고루한 이야기라는 시각도 있다.
“인간공동체의 최소 단위다. 거기서 배우고 희망을 품고 했던 것이 다른 범위의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가족 얘기를 하는 건 역설적으로 가족이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혈연 중심으로만 묶어둘 수 없게 가족이 진화하고 있다. 인간은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태어날 수도, 성장할 수도, 생활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존재 아닌가.”

-계간지에 연재할 때는 없던 에필로그를 새로 써서 단행본의 마지막 장으로 실었다.
“연재를 마치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4년간 꿈꾸던 여행인데 하필 환율이 제일 높을 때였다.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봤다. 가슴이 무척 요동을 쳤다.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이 단아하고도 성스러웠다.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성모를 저렇게 젊게 표현했을까 하다가, 정신적 불멸의 존재로 어머니를 표현한 것이구나 싶었다. 거기서 엄마를 부탁할 자리를 찾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다’라는 에필로그의 첫 문장은 미리 생각해 두었다.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엄마는 잃어버리고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후남 기자

“가족에 대한 죄의식과 책임감은 아버지의 숙명”
1996년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52)씨는 2002년부터 중국에 머물고 있다. 중국문명사를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최근 신작 장편 『고향사진관』을 펴내 한국에 다니러 온 덕분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1996년 소설 『아버지』는 중장년층이 구조조정에 내몰린 시대상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난 경제는 잘 모른다. 경제적 상황보다는 당시 지난 역사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였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낀 세대였다. 그런데 내가 존경하던 나이 든 선배들이 굉장히 허무해하고 서운해 하는 모습을 봤다. 뭔가 잘못돼 오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대의 질곡을 어떻게든 극복해온 아버지들 아닌가. 아버지의 역사가 부정당하는 이런 모습에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픽션이다. 아는 의사에게 생존율이 아주 낮은 병명을 물었고, 의학서적 등을 참조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의 실제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흔히 권위주의의 상징, 부정하고 타도할 대상처럼 여기지만 내가 지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다르다. 시발택시·버스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나한테 액셀 밟는 법을 가르쳐 주신 기억이 난다. 자식을 친구처럼 대하는 아버지였다. 나는 젊어서부터 나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회 선배들과 어울리는 걸 즐겼다. 그분들이 술자리에서 그냥 주고받는 말이 내게는 보석 같았다. 내 아버지의 입을 통해 직접 배우지 못한 부분에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런 선배들의 말을 지겹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아버지』의 주인공은 췌장암으로 시한부생명을 선고받는다. 그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뒷일을 준비한다. 그런 주인공의 마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자존심인가.
“가족에게 잘해 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일 것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아버지들이 타고난 숙명 아닌가. 그러면서도 미안하다고 나긋하게 말하는 대신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경제개발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정서다. 그랬던 아버지가 갑자기 ‘나 병들었다’며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게, 속된말로 쪽팔리고 염치 없었던 거다.”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탈북자를 소재로 소설 『길 없는 사람들』을 쓰면서 취재차 중국을 찾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땅덩어리에 놀랐고,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서 역사를 간직한 것에 매료됐다. 아버지들이 살아온 삶도 그 자체로 역사다. 그걸 매몰차게 난도질해 묻어버리려는 건 말이 안 된다. 살아온 역사를 부정하는 건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와 생각하면,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불안해하고, 그 불안감에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아버지』에 대한 반응을 낳은 것 같다. 가장 다급할 때 가족이 위안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신작 『고향사진관』도 가족 이야기다.
“17년 동안 병든 아버지를 모셨던 내 친구의 실화다. 효심을 강조하는 얘기로 오해를 하는데, 그런 중에도 내 친구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범한 삶의 행복,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가치,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할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긍정의 시각이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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