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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배우는 상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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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는 '상생(相生)'이다. 그럴듯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상생'을 외치지만 원조 상생은 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

해바라기의 가운데에는 씨앗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그런데 이 씨앗의 배열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의 나선을 발견할 수 있다. 해바라기의 나선수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1개와 34개, 혹은 34개와 55개다. 이 나선의 수는 1, 1, 2, 3, 5, 8, 13, 21, 34, 55 …와 같이 계속되는 피보나치 수열에 등장한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발견한 이 수열에서 1+1=2, 1+2=3, 2+3=5, 5+8=13과 같이 앞의 두 수를 더하면 그 다음 수가 된다.

해바라기는 피보나치 수를 따라 씨를 배열할 때 좁은 공간에 많은 씨를 담을 수 있다. 결국 해바라기는 최적의 수학적 해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 외에도 피보나치 수열이 적용되는 예를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꽃잎의 수는 치커리 21장, 데이지 34장과 같이 피보나치 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꽃잎은 꽃이 피기 전, 봉오리를 이루어 내부의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리저리 겹치면서 효율적인 모양으로 암술과 수술을 감싸려면 피보나치 수만큼의 꽃잎이 있게 된다고 한다. 또 줄기에서 잎이 나와 배열되는 방식을 나타내는 '잎차례'도 피보나치 수열과 관련된다. 식물이 a번 회전하면서 b개의 잎이 나올 때 잎차례는 a/b가 되는데, 대부분의 식물에서 잎차례를 계산해 보면 분모와 분자에 피보나치 수가 들어 있다.

이는 나무가 잎을 배열할 때 위의 잎에 가리지 않고 햇빛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엇갈리면서 잎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벌집의 단면은 정육각형이다. 정다각형 중 평면을 빈틈없이 메우는 것은 정삼각형.정사각형.정육각형, 이렇게 세 가지다. 그 중에서도 정육각형들을 붙여놓으면 서로 많은 변이 맞닿아 있어 구조가 안정적일 뿐 아니라 사용되는 재료에 비해 넓은 공간을 얻을 수 있어 경제적이다. 꿀벌이 정육각형 구조로 집을 짓는 이유는 최소 재료로 최대 공간을 확보하는 최적의 방안이기 때문이다.

눈송이나 고사리를 보면 전체 모양이 부분에 반복되어 나타난다.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을 가진 프랙탈은 리아스식 해안선.번개,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프랙탈이 들어 있다. 허파꽈리는 좁은 공간에서 표면적을 최대로 해 산소 운반의 효율을 높이고자 하는데, 브로콜리 모양의 프랙탈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또 상추잎 끝의 우글쭈글한 모양을 관찰해 보면 이 또한 주름진 모양 안에 동일한 모양의 주름이 들어 있는 일종의 프랙탈임을 알 수 있다. 생명체는 안정된 구조를 이루기 위해 물리적으로 낮은 에너지의 상태를 선호하는데, 상추잎은 프랙탈이 될 때 에너지 상태가 낮아져 구조적으로 안정된 탄성적 균형을 이룬다고 한다.

이처럼 최적의 것을 추구하는 자연의 본성은 피보나치 수열이나 정육각형 구조와, 때로는 프랙탈과 맞닿아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 역시 최적의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최적이란 사회 전체로서의 최대 이익보다는 개인이나 개인을 둘러싼 작은 집단의 이익을 최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지독한 개인 이기주의.가족 이기주의.지역 이기주의.정당 이기주의 등이 팽배해 있어 전체적인 조화와 총합으로서의 최선을 생각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렇지만 자연은 다르다. 예컨대 햇빛을 최대로 받기 위한 잎의 배열은 결코 특정 잎의 입장만이 아닌, 전체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배워야 할 것은 국소적이고 편협한 이익을 뒤로 하고 총합으로서의 최적을 추구하는 '상생의 지혜'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