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원내대표 밀실협상 없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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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회가 어렵사리 정상화됐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 자행된 불법과 폭력은 그 정도가 심했다. 세계적 조롱거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금융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에 큰 분노와 실망을 안겨주었다.

국회는 국민들의 다양한 이익을 대변하는 여러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로 구성돼 있는 만큼 법안 처리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 아래서는 이러한 대립과 갈등이 국회법이 정한 틀 안에서 조정되고 조율돼야 한다. 이러한 틀을 벗어난 불법과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불법을 막기 위한 폭력도, 폭력을 막기 위한 불법도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 이제 국회 내에서의 불법과 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성찰해볼 때다.

우선 지금까지 반복돼 온 국회 내 불법과 폭력의 고리를 자르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엄중한 평가와 그에 상응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일부 의원들의 폭력도 문제지만 이번의 경우 특히 보좌관이나 당직자들의 불법 폭력 행위 가담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국민의 대표도 아니고, 면책특권의 주체도 아니며, 의안 심사의 주체도 아니다. 이들이 폭력 행위의 주체로 나섬으로써 양상이 더욱 심각하게 진행됐다. 이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로 재발을 철저히 봉쇄해야 한다.

  제도적 개선 방안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국회 운영의 중심축인 원내대표회담에 대한 재검토다. 지금까지 국회 운영은 원내교섭단체 대표들의 협의로 결정돼 왔다. 국회 파행을 막기 위해서는 국회 운영의 중심을 공식 기구인 운영위원회로 옮겨야 한다. 원내대표 회담의 문제점은 여러 가지다. 첫째 원내교섭단체 외 군소 정당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민주적 요소가 있다. 둘째 원내교섭단체별로 대표 한 사람씩 만나는 자리이기에 의석 수가 170석인 정당이나 20석인 정당이나 발언권이 같다. 역시 비민주적이며 불합리하다. 셋째 회담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그 내용이 기록으로 남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 회담을 평가하고 비판할 수 없다.

국회 운영 결정권을 운영위원회라는 공식 기구로 옮길 경우 이런 문제점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개리에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밀실 협상이 불가능하다. 정당별 의석 수에 비례해 위원을 선임함으로써 대표성의 문제도 해소된다. 소수의 목소리도 반영된다. 두세 명의 원내대표가 회담을 하는 것보다 20여 명의 의원이 회의를 같이 한다면 절충안을 모색하거나 타협점을 찾아낼 가능성도 커진다.

미국 하원 규칙위원회(rules committee)의 구성과 기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규칙위원회는 하원 본회의에 상정될 각종 법안이나 결의안 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사전에 엄밀하게 규정한다. 각 법안에 대해 토론을 할 것인지 여부, 토론을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몇 시간이나 할 것인지, 법안을 수정한다면 어느 대목은 가능하고 어느 대목은 불가능한지 등등. 규칙위원회가 결정한 대로 본회의를 진행하니까 파행이 있을 수 없다. 규칙위원회는 여야에서 추천한 의원 13명으로 구성된다. 전체의석 수(민주당 256석, 공화당 178석)와 무관하게 규칙위원회엔 여당 의원 수가 훨씬 많다. 현재는 민주당 9명, 공화당 4명이다. 여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인정한 셈이다.

  끝으로 지난 국회 파행 과정에서 주목받았던 국회의장의 권한과 관련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중한 직권상정 권한의 행사’다. 직권상정제도는 법안 등에 대한 국회 논의의 대부분을 생략하게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국회 내 불법과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대화와 설득을 통한 타협의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을 섬기려는 노력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데, 그 노력에는 지혜와 용기는 물론 인내도 필요하다. 누가 이러한 노력을 잘 했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임종훈 홍익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