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낯 뜨거운 새해 수출품 ‘몸싸움 삼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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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무력화한 민주당원과 방호원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몇몇 의원은 이 와중에 부상을 입었다”(BBC·땅바닥에 나뒹구는 민주당 의원 사진)

2009년 대한민국의 첫 유럽 수출품은 몸싸움하는 삼류 정치였다. 새해 벽두부터 유럽 언론에 우리나라 의원들의 몸싸움 사진과 기사가 게재된 것이다. 땅바닥을 뒹굴며 머리를 감싸는 의원들, 멱살 잡힌 국회 방호원이 클로즈업됐다.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울부짖는 모습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성공작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국내 정치용이라면 모르겠지만 해외에서 보는 이런 사진들은 엽기적일 따름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존재하지도 않는 일부 후진국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부 유럽 언론은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데 양측 모두 병원에 호송돼야 했다”며 사실상 ‘정치 쇼’ 아니냐는 뉘앙스로 보도하기도 했다. 한 프랑스 취재원은 그 장면을 두고 “입법권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국회의원이 왜 방호원들과 멱살잡이밖에 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한 뉴스는 너무 다양해 어떤 게 진짜 한국인지 헷갈린다”고도 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최고 권위인 롱티보 콩쿠르에서는 20대의 한국 바이올리니스트가 1등을 차지했다. 그의 연주 후 쏟아지는 관객들의 ‘브라보’ 함성과 기립박수는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였다. 며칠 뒤 프랑스 주요 언론은 ‘한국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한국 영화 ‘놈놈놈’이 파리 샹젤리제에서 개봉 중이고 이달 독주회를 여는 백건우씨와 지난해 말 연주회를 가진 정명훈씨 공연 이야기는 클래식 채널에서 잇따라 소개됐다.

지난해 삼성·LG·기아 등 한국의 주요 기업들 역시 프랑스 경제지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그들은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 꼬리표를 단 양질의 수출품이다. 이렇게 경제와 문화 상품들이 어렵게 쌓아 올린 한국의 이미지가 정초부터 삼류 정치의 저질 수출품 때문에 일거에 무너지는 느낌이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