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장교시절 히틀러 사진에 총격일화 유명 - 바이츠제커는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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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바이츠제커는 1920년 그의 이름앞에 붙은 폰(von)이 말해주듯 독일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교황청 주재대사를 지낸 아버지는 남작.그의 품위있는 외모.언행은 지금도 귀족냄새를 풍긴다.19세되던 해 2차대전이 일어나 장교로 입대,나치군의 폴란드 침공에 참가했다.같은 연대에 있던 형은 개전(開戰) 다음날 전사. 독일.영국.프랑스에서 법률과 역사를 공부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뒤 실업계에 종사하다 69년 연방하원의원에 진출해 하원부의장.베를린시장을 거쳐 84년 대통령이 됐다.특히 81년 그가 베를린시장이 됐을 때 그 도시는 젊은이들의 질서파괴로 큰 혼란에 빠져있었다.바이츠제커는 젊은이들과 대화를 해 베를린에'관용과 조화'를 회복,일약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는 독일 개신교의 지도적인 인물로 독일 기독교총회 총재와 종교회의 이사를 지냈다.78년 그가 중심이 돼 만든 기민당 최초의 기본강령에는 바이츠제커의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한 인간이해가 많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평론가들은 기독교적인 인간상에 대한 그의 이해와 칸트를 진지하게 수용하는 계몽주의의 후예라는 자각,그리고 가족의 전통이 그의 윤리적 확신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석한다.

그의 아버지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7년형을 선고받았는데 그때 변호인단의 조수로 일하면서 나치의 만행에 대한 방대한 비밀기록을 읽은 것이 그로 하여금 인간성과 모럴에 민감하고 과거청산에 적극적이게 만들었다고. 91년 2월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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