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현실>도시 근로자가구 소득 통계의 뒷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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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견 주방용품 제조업체 E사에 다니는 李모(36)과장은 통계청이 분기마다'도시근로자가구 월평균 소득'통계를 발표할 때마다 의구심을 갖게 된다.이 발표를 보면 지난해의 경우 도시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2백15만3천원.하지만 李과

장이 매달 손에 쥐는 월급은 1백17만6천원에 불과하다.연 6백%인 보너스를 합쳐봐야 李과장의 평균 소득은 월 1백68만원 정도다.

“우리 회사만 해도 나보다 수입이 적은 직원이 훨씬 더 많은데 우리 집의 소득이 평균치에 훨씬 못미치니 어떻게 된 겁니까.”정부 통계가 봉급생활자들이 느끼는 현실과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 李과장의 생각이다.통계청의 설명은 이렇다.

우선 李과장은 자신의 월급만 따졌지만 통계청이 발표하는 수치는 가장뿐만 아니라 다른 식구의 소득도 모두 합친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구당 직장을 다니는 취업인원은 평균 1.56명이었다.두가구당 1명꼴로 가장 외에 직장을 다니는 식구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번 근로소득은 월평균 36만원으로 전체 소득의 16.7%를 차지했다.

반면 도시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중 가장의 근로소득은 전체의 68.6%인 1백47만8천원에 불과했다.맞벌이 부부가 계속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장의 월급과 가구전체 소득의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요인은 또 있다.통계청이 집계하는 소득은 월급등으로 받는 근로소득 뿐만 아니라 건물이나 가게 임대료등 재산소득,은행 예금에서 나오는 이자나 주식배당금은 물론 부모나 자녀등으로부터 받는 생활보조금등도 모두 포함된다.지난해의 경우 재산소득과 이자.배당소득및 생활보조금등은 전체 소득의 11.2%나 됐고 부업소득도 3.4%를 차지했다.지난해 도시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 2백15만원을 항목별로 나눠보면▶가장의 근로소득(월급.보너스.수당등 총소득)이 1백48만원▶가장

외 식구들의 근로소득이 36만원▶재산소득및 친지로부터 받은 생활보조금등이 24만원▶부업소득이 7만원이었다.

따라서 李과장의 경우 월급등으로 받는 수입만 따지면 전체 근로자 가운데 중간이상이지만 다른 소득을 포함하면 도시근로자가구의 평균 보다 적은 것이다.

李과장이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또 다른 요인은 세금이다.李과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손에 쥐는 월급과 보너스(회사에서 미리 세금등을 제하고 난 후의 금액)를 수입으로 생각하는데 반해 통계청 발표는 세금을 떼기 전의 소득이다.지난해의 경우 도시근로자가구당 세금이나 국민연금등으로 낸 돈은 월평균 20만8천원.따라서 근로자가구가 실제로 손에 쥔 순소득(가처분소득)은 1백94만6천원이 된다.李씨의 월급과 보너스도 세금을 떼기 전의 금액을 기준으로 계산하

면 월평균 1백87만5천원으로 통계청 발표에 나타난 가장의 평균 근로소득 1백48만원보다 훨씬 많다.도시근로자가구의 범위도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요인중 하나다.

보통 근로자라고 하면 흔히 생산직 근로자를 떠올리지만 통계청 기준으로는 월급생활자라면 기업 임원이나 사장까지 모두'근로자'에 포함된다.현재 통계청이 발표하는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지출은 전국의 3천4백여 근로자 가구를 대상으로 조

사원이 일일이 방문해 해당 가구의 가계부를 보고 작성한다.이때 조사대상은 지역별 인구를 감안해 무작위로 뽑는데,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가구주가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이면 모두 대상에 포함된다.따라서 기업체 임원이나 월급쟁이 사장도 모두 근로자가구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한국은 아직도 가장의 월급봉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며“이 때문에 근로자가구의 월평균 소득.지출 통계와 가장의 월급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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