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디레버리지의 세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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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30면

2009년은 경제 예측을 포기한 해다. 모든 전망이 최소한 두세 단계 내려 잡아도 거의 시계(視界) 제로 상태다. 전망이 불가능하다면 뭐가 문제인지 의문을 제대로 던질 수 있어야 하지만 이마저 어렵다. 현명한 질문은 그 속에 답의 절반은 있어야 하니까.

현 세계경제 상황은 일단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선진국들이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고, 그 부실의 ‘지뢰’들이 지금도 도처에 널려 있는 현실이 하나다. 세계 투자자금의 안전자산 쏠림 현상으로 금융위기와 외환위기에 동시에 노출된 신흥국들은 신용 코스트 급상승 부담에 시달리고, 선진국의 수요 감소로 수출마저 줄어드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현실이 둘째다. 선진국이나 신흥국 모두 자산가치가 급락하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그 결과로 생산 및 고용 감소, 다시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맞서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고, 재정을 통한 강력한 부양정책을 펼쳐 경제를 떠받치는 사투(死鬪)를 벌이는 현실이 셋째다.

이런 현실 진단이 크게 틀리지 않다면 경제를 수렁으로 끌어내리는 디플레이션 세력과 이에 맞서 끌어올리려는 인플레이션 세력의 대회전이 2009년 세계 경제의 주요한 관전(觀戰)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전망 아닌 전망을 해 본다.

그렇다면 경제를 주저앉히는 디플레이션의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한마디로 레버리지(leverage)를 해소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의 파괴력이다. 레버리지는 지렛대다. 빚을 지렛대 삼아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게 레버리지 투자전략이다.

과도하고 무모한 레버리지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렀다면 2009년의 세계는 디레버리지의 혹독한 후폭풍을 견뎌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 레버리지가 높을수록 디레버리지에 따른 추락의 골도 깊다.

한 투자자가 자기자본 20억원에다 80억원을 빌려 100억원을 투자했다고 치자. 이때 레버리지는 5배다. 이런 상태에서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10%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보유한 자산 가치 90억원 중 빚은 80억원 그대로 남은 상태에서 자기자본만 10억원으로 줄게 돼 레버리지는 9배로 급증한다. 이때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가 위험부담을 의식해 레버리지를 5로 낮춘다고 하자. 줄어든 자기자본(10억원)에 따라 자산도 50억원으로 줄여야 하므로 투자자는 40억원의 빚을 갚아야 한다. 금융회사마다 너도나도 디레버리지에 나서 자산이 다시 10% 떨어진다면 50억원의 자산은 45억원이 된다. 빚은 40억원 그대로이고 자기자본만 5억원으로 줄어 레버리지는 다시 9배로 껑충 뛴다.

모든 금융기관이 거의 동시에 이런 식으로 디레버리지에 나설 경우 자산가격 폭락에 따른 자기자본 감소로 레버리지가 치솟으면서 지급불능 사태를 불러온다. 1996년 작고한 시카고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가공할 ‘민스키 순간(Minsky Moment)’이다. 지난해 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29.9달러짜리 주식을 단돈 1달러로 만든 것도 이 디레버리지의 파괴력이었다.

레버리지의 시대는 가고 기업과 금융기관, 가계 모두 차입축소와 부채상환의 디레버리징(deleveraging)에 나섰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소비로 가지 않고, 빚을 줄이거나 현금으로 움켜쥐려는 ‘디레버리징 사회’의 도래다. 지난해 새해 결의로 ‘빚을 줄이자’고 했던 미국인들이 실제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전체 소비를 줄이면서 일본은 물론 중국 등 신흥국들의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디레버리지 현상은 계속되는 금융 불안 때문에 2010년이나 돼야 해소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은 내다본다. 외국인 투자가의 디레버리지에 따른 ‘셀 코리아’로 한국은 2008년 이미 호된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는 너무 이르다. 모건스탠리는 가계의 디레버리지와 자산 가격 및 원화 가치 폭락에 따른 소비침체가 2009년 한국 경제의 최대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본격적인 디레버리지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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