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감독 “이젠 올림픽 금빛 기억 잊고 거듭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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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인식 감독이 서울 서소문 공원에서 WBC 4강신화 재현을 다짐하고 있다. [김진경 기자]

“대표팀에 뽑힐 정도면 혜택받은 선수들 아닌가. 보이지 않는 손해쯤은 감수하자.”

김인식(62) 야구대표팀 감독이 강렬한 호소로 기축년 새해를 열었다.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김성근 SK 감독과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일군 김경문 두산 감독이 고사한 뒤에 맡은 자리라서 그의 말엔 무게가 더했다. “대회가 다가오면 잠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자리다. 4년 전 찾아온 뇌경색의 후유증으로 거동이 다소 불편한 김 감독은 2006년 제1회 WBC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일군 뒤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국내 경기와 달리 WBC는 경기 전 선수와 감독을 그라운드에 세워놓고 오프닝 행사를 하지 않나. 아무래도 다리가 성치 않으니까 싫더라고. 혹시나 ‘한국에 지도자가 없어 몸이 불편한 사람을 내세웠나’라는 시선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는 게 김 감독의 솔직한 속내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그에게 다시 한번 중책을 맡아줄 것을 청했고, 김 감독은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다. 노장 감독의 용단에도 몇몇 구단은 코칭스태프 선임 과정에서 코치 차출에 협조하지 않는 ‘구단 이기주의’를 드러냈다. 어렵사리 코칭스태프를 확정하고 엔트리 32명의 2차 후보 명단까지 발표한 상황, 김 감독은 재차 ‘사명감’을 강조했다.

김 감독은 역설적으로 “선수들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기억을 잊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13년 만의 500만 관중 돌파와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도취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다시 팬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또 2009년엔 팬들에 대한 보은으로 야구 열기를 이끌어 내자고 제안했다. “새해엔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데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 경기를 지켜보는 시간만이라도 고단함을 잊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이것이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사명이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이 대표팀이다. 현재 선수들은 과거보다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그렇게 나아졌으면 국가도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WBC는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물질적 이익이 있어야만 야구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대표팀에 뽑힐 정도면 누릴 것은 다 누린 선수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손해가 있더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하남직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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