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잘안되는 이회창 - '대표가 수수방관' 비판 정치역량 시험대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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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대표의 표정은 매우 어둡다.

당 대표에 취임한지 한달여만에 밀려든'정태수 리스트'파문으로 곤혹스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당내 일각에선 음모론까지 들고 나와 李대표를 비판할 정도다.그런 와중에 이번에는“신한국당 간판으로는 안되겠다”며 당명을 바꾸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15일 대전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대전시지부와 충남도지부 당직자들이 李대표에게 김현철(金賢哲)씨에 대한 단호한 사법처리와 함께 강력히 주문한 부분이다.그러지 않으면 정권재창출은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사태가 이쯤에 이른 것이다.

李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현철씨 처리문제 등에 대해'법대로'를 주장했다.특유의 원칙론이다.

그러나 한보 수사의 불똥이 여야 정치인 소환조사로 이어지면서 이같은 원칙론은 적잖은 위협을 받고 있다.당장 당내에서부터 격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첫 반발은 민주계에 의해 비롯됐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의 면담에 이은 서석재(徐錫宰)의원과의 회동등으로 다소 진정된 듯하지만 갈등기류는 여전히 내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환조사의 파장은 민정계의 대부격인 김윤환(金潤煥)고문에까지 이어졌으며 15일에는 李대표가 직접 임명한 하순봉(河舜鳳)대표비서실장까지 소환됐다.

민주계뿐만 아니라 민정계.주요당직자 할 것없이 전방위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덩달아 당 안팎에선“대표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며 李대표의'법대로'이미지를 흔들고 있다.

급기야 李대표의 입장은 최근 들어 검찰의 정치인 수사 조기 매듭을 주장하는 실리론으로 변화되기에 이르렀다.지난 12일 金대통령과의 면담에서 李대표는“정국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조사가 빨리 종결돼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의문이다.이번엔 대상이 바뀌어 검찰과 여론의 반발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李대표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기 위해 당내 지지를 얻으려고 검찰권 행사에 외압을 가하고 있다는 의혹과 비판이 제기됐다.

李대표의 한 측근은“참으로 진퇴양난”이라고 말했다.어쨌든 정태수 리스트를 둘러싸고 李대표의 정치력은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있다. 〈대전=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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