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없는 與 소장파 "실세 필요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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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4일. 당시 김태홍.정범구 의원 등 민주당의 '새벽 21'소속 초선들은 김대중 대통령 직계인 동교동계의 2선 퇴진을 요구하는 당정쇄신 건의서를 청와대에 전달한다. 집권 2년 만에 불거진 초선의 반란은 정풍.쇄신파동의 시발이 됐다. 요즘 열린우리당에도 이와 비슷한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초.재선급이 발족한 '새로운 모색'(공동대표 김영춘.송영길) 등 겁없는 소장의원 모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권력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열린우리당에는 '실세'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의 당내 역할을 인정치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밀었던 이해찬 의원이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실세들의 입김이 통하지 않은 사례다. 과거 정권엔 없던 일이다. 앞서 천정배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광재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직격해 낙마시키기도 했다.

최근엔 한 걸음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이 당과 청와대의 공식 창구로 지정한 문희상 정치특보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류가 일고 있다. 아예 실세와의 한판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새로운 모색'의 한 회원은 "공식적인 시스템을 통해 청와대 입장을 전달해야지 창구는 무슨 창구냐"고 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당이 청와대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체제는 안 된다"며 "지금 물밑에선 거대한 줄다리기와 충돌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문 특보가 제기한 민주당과의 합당론도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문 특보는 "왜 나한테 문제제기를 하느냐"며 "그게 다 대통령에게 그러는 것 아니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측은 당.정부.청와대 공식 채널이 마련되고 6.5 재.보선이 임박하면서 정면충돌은 자제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재선 의원은 "재.보선 이후 다시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정.청 고위 정무회의 멤버로 문 특보가 참석하는 게 마땅치 않다는 의원도 있다. 아직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이미 신기남 당의장.천정배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실세'를 타깃으로 싸우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사례를 목격한 바 있다.

강민석.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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