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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DVD에 딱! 스펙터클 서사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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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을 다룬 대형 서사극인 '킹덤 오브 헤븐'(5월 4일 개봉)은 '글래디에이터'를 만들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이다. 1960년대 초반 '십계''벤허''스파르타쿠스''엘 시드' 등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너무나 많은 제작비 탓에 '클레오파트라' 이후 잊힌 서사극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 '글래디에이터'다. 역사의 한 사건이나 인물을 조명하면서 당대의 사회상은 물론 대규모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거대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서사극. 볼거리로서 영화가 시작된 이래 스펙터클을 앞세운 서사극은 할리우드의 전매특허 같은 장르였다.

DVD는 대작 서사극에 필수적인 매체다. 과거 비디오로 출시된 '벤허'나 '십계'는 극장에서 느꼈던 스펙터클을 재현할 수 없었다. 잘린 화면에 초라한 음향의 비디오로 보면 '십계'의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도, '벤허'의 스릴 넘치는 전차 경주 장면도 애들 소꿉장난처럼 보인다. 하지만 5.1 채널이 지원되는 AV시스템과 대형화면의 TV가 있다면 대형 서사극의 감동을 집에서 맛볼 수 있다. '글래디에이터'는 그런 서사극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DVD로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과 함께 최고의 레퍼런스 타이틀로 꼽힌다. 레퍼런스 타이틀이란 화질.음향이 뛰어나게 구현돼 집에 있는 AV시스템을 만끽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DVD를 말한다. 또한 '글래디에이터'는 'Gladiator Games'을 통해 영화 속 검투사 경기의 역사를 보여주고, 'Behind the Scene'에선 로마의 풍경을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과 액세서리 등의 디자인을 일러준다.

'트로이'는 '글래디에이터' 이상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헬레나를 둘러싼 인간의 전쟁이자 신들의 싸움이었던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국한한다.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트로이'는 신화적 상징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한다. 신들의 질투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권력욕으로 전쟁이 시작되는 것. 브래드 피트.에릭 바나.올란도 블룸 등 스타들의 육체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지만 신들의 놀이가 빠져 조금은 아쉽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는 게 'Gallery of the Gods'다. 3D 애니메이션으로 그리스신화를 간략하게 알려준다.

무삭제 확장판으로 나온 안톤 푸쿠아 감독의 '킹 아더'는 '트로이' 이상으로 현실을 가혹하게 해석한다. 신검 엑스칼리버를 치켜들고,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카멜롯의 왕이 되는 아더왕의 전설은 '킹 아더'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아더왕은 로마의 파견 사령관이었다고 주장한다. 원탁의 기사와 원주민이 어울려 싸우는 전쟁이 멋지긴 하지만 존 부어맨 감독의 '엑스칼리버'가 안겨준 아찔한 감흥에는 미치지 못한다. 화질과 음질이 좋아도 감동을 결정하는 것은 역시 영화 그 자체. 무삭제판에는 감독의 원뜻을 자세히 알려주는 14분 분량의 영상이 추가됐다.

서사극의 대명사는 여전히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처럼, 한순간에 귀족에서 노예로 전락하는 벤허의 역정을 그린 '벤허'는 영상을 새롭게 복원하며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했던 요즘의 젊은 관객에게 다가간다. 한 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인 'The Making of an Epic'은 '벤허'의 원작이 무엇인지, 연극 무대의 '벤허'는 어땠는지 등을 알려준다.

노예 검투사의 반란을 다룬 스탠리 큐브릭의 '스파르타쿠스 SE'는 '벤허'에 견줄 만한 대작. 직접 제작까지 떠맡은 배우 커크 더글러스의 야심이 감독을 압도한다. 큐브릭은 자신의 연출 목록에서 '스파르타쿠스'를 뺏을 정도. 하지만 큐브릭의 정교하면서도 신랄한 연출은 '스파르타쿠스'에서도 여전하다. 'Rare deleted scenes'에서는 동성애를 암시한다는 이유로 잘려나간 로렌스 올리비에와 토니 커티스가 나오는 6분30초를 볼 수 있다.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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