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보다 청와대 살리기 다급 - 검찰 왜 정치인 수사로 돌아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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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의 정치인 소환이 시작되면서 정치권에서는'김현철(金賢哲)살리기'를 위해 검찰이 정치인 수사를 서두르고 있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적어도 비난 열기가 다소 식을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정치권으로 수사방향을 바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사 실무진은 이번 정치인 조사파문이 결과적으로 현철씨에게'자유인'신분을 좀더 즐길수 있는 시간을 줄지는 몰라도 현철씨 살리기까지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특히 한보관련 은행장.경제수석 수사를 늦추기 위해 정

치인 수사를 먼저 한만큼 현철씨 수사에는 결코 영향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일을 전후한 검찰 수뇌부와 대검중수부 수사팀 사이에 벌어졌던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의견대립 상황을 보면 이같은 주장을 믿을 만하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들은 3월말부터 은행장과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한이헌(韓利憲).이석채(李錫采)씨에 대한 사법처리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검찰은 해당 은행과 은행감독원 실무진을 잇따라 소환조사한 결과 이들 행장과 전직 경제수석들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사법처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은행장들과 전직 경제수석들의 소환날짜가 언제인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때 검찰총장.중수부장.수사기획관등의 움직임이 정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8일 하루종일 심재륜(沈在淪)중수부장과 김상희(金相喜)수사기획관이 상기된 얼굴로 김기수(金起秀)검찰총장 사무실을 드나들었으며 중수부 과장들도 잇따라 중수부장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중수부 수사실무자들은 일절 입을 열지 않았지만 무엇인가 불만이 가득찬 표정이었다.

바로 다음날인 9일 대검중수부는 당초 계획을 바꿔'정태수 리스트'에 거론된 정치인 소환조사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8일과 9일의 검찰 움직임이 겉보기에는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음모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알고 보면 수사팀은 당초 수사스케줄대로 전직 경제수석등에 대한 사법처리를 위해 이들의 소환조사방침을 수뇌부에 보고했고 수뇌부는 이를 반대해 갈등을 겪었지만 그것은 결코 현철씨 수사부분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는 왜 전직 경제수석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반대했을까.

이에 대해 많은 검찰관계자들은 “전직 경제수석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현철씨 사법처리에 못지않게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또“청와대로서는 차라리 민주계 핵심인사를 포함한 국회의원 수십명의 검찰소환이 홍인길(洪仁吉)전 총무수석을 포함한 대통령의 뜻을 내각에 전하는 역할을 하는 수석비서관 3명의 구속사태보다는 훨씬 정치적 부담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전직 경제수석 사법처리를 막거나 늦추기 위한 목적이라면 정치인 소환조사는 단순히'김현철 살리기'차원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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