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설 증폭에 민주계 달래기 - 이회창 대표, 김영삼대통령 긴급면담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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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일 오전 긴급히 이뤄진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대표의 요담은 신한국당의 내분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의 심각한 동요사태를 잘 반영하고 있다.

李대표는 당초 11일 오후 金대통령을 만나려 했을 정도로 시국의 급박함을 느끼고 있다.

현재 정치권은 세갈래로 요동치는 극심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여야 전체로는 김수한(金守漢)국회의장등 정태수리스트의 새로운 의혹들이 속속 불어나고 있다.신한국당은'음모설'을 놓고 李대표세력과 민주계가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한보 돈이 창당자금에 흘러들었다는 의혹에 발끈하며'은폐공작설'로 맞서고 있다.

한보사건의 본질이나 김현철(金賢哲)씨 문제를 희석시키려 야당쪽으로 돌을 던진다는 주장이다.

청와대요담은 이런 혼미속에서 정국수습의 가닥을 잡아보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요담에서는 검찰수사가 원칙적이고 여론에 부응하는 것이긴 하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문제가 크다는 점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李대표는“정치인도 인권이 있는데 국민의 의심에 완전 노출돼 있는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요담에서 제일 심각하게 다뤄진 문제는 신한국당의 내분(內紛)위기인 것같다.

수사의 화살을 직접 맞고있는 김덕룡(金德龍)의원을 비롯한 민주계는“정태수 리스트가 민주계를 약화시키려는 음모에 따라 춤추고 있다”는 주장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음모론의 한켠에는“金대통령이 현철씨를 살리려 민주계 몰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그러나 대체적으론“당지도부가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며 李대표쪽을 겨냥하고 있다.민주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李대표는 작금의 이같은 상황을 취임후 최대 위기로 보고 있다.그는 사태를 방치하면 자신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대세론의 경선구도'도 위협받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두갈래로 사태에 접근하는 것같다.

李대표는 민주계의 음모설은 근거가 없다고 단언하며 이를 강하게 일축한다.그는 민주계의 위기감을 이해한다면서 대부(代父)인 金대통령의 힘을 빌려 민주계를 달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李대표는 이날 아침 오세응(吳世應).신상우(辛相佑).정재문(鄭在文)의원등 민정.민주계 중진 11명과 식사를 같이 하면서 수습방안을 논의했다.李대표는“음모설은 가당치 않으며 이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서 설명하겠다”고 했다.

모임에서는“시국이 매우 어려우니 金대통령과 李대표가 만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건의도 있었다.李대표의 수습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같은 시간 민주계 중진 12명도 모임을 가졌다.

발표된 성명은 예상보다 부드러웠지만“한보문제가 본질이 아닌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의구심”을 빠뜨리지 않았다.일부 인사들은 李대표에 대해'방관의 책임'을 거론하며 격한 표현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주계는 금주중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인 경선준비에 나설 채비다.李대표와 민주계의 관계는 검찰수사의 결과와 후보단일화등 신한국당 전체의 역학구도에 달려있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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