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경제 회생 무엇을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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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람들이'와 이래 좋노'라고 손뼉치며 지낼 만큼 경제만 잘 돌아가고 있었더라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지금같은 정치적 궁지에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경제 사정이 악화돼 경제 환부(患部)가 터지니까 그 속에 들어 있던 정부 경제정책의 어리석음이 전임 아닌 시임(時任)권력의 금전적 비행(非行)과 함께 터져나오기에 이르렀다.

경제정책의 어리석음은 정부.국회.중앙은행이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우리 경제의 난국이 고비용과 저생산성 때문이란 진단에 이의(異議)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우선 고비용부터 잡아야 한다.고비용이란 궁극적으로 생산요소의 값이 경쟁

대상국에 비해 비싸다는 것이다.자본의 이자율,노동의 임금률,토지의 지대가 생산 요소의 값이다.

생산 요소의 값이 오르는 것은 수요는 많고 공급은 달리기 때문이다.생산 요소의 자연스런 공급 증가에 걸맞은 정도를 넘는 경제성장률이야 말로 생산요소에 대한 초과수요를 일으켜 그 값을 오르게 한다.드디어 지금은 고비용 자체가 경제성

장률을 억누르고,따라서 고비용을 수그러들게 하고 있다.한참동안 경제성장률을 노동력 숫자와 생산성 증가율,즉 자연성장률 이하에 묶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은행의 독립이 성장률 안정,생산요소 가격 안정,물가안정,이런 순서의 금융정책 목표를 완수하는데 꼭 필요하다는 세계 공통의 최근 인식은 경험의 산물이다.영국의 중앙은행은 재무부 밑에 종속돼 있으면서도 독자적 금융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5월 선거에서 정권을 잡을 것이 틀림 없다는 노동당의 섀도 정부에선 그 재무부 대신 고든 브라운이 솔선해 영국의 중앙은행을 더 독립적이 되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규제를 혁파해야 하는 까닭은 규제가 시장의 거래비용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금리가 높은 것은 거의 전적으로 규제 탓이다.생산요소 가운데 자본만은 국제적 이동이 자유롭다.그 공급은 실은 현재 거의 무한에 가깝다.차입자의 신

용에 따라 달라지는 리스크 조정이 있을 뿐,세계적으로 동일한 이자율로 돈을 쓸 수 있다.

투자자금 수요가 너무 적은 나라는 이자율이 내려 가는 일이 생긴다.그러나 자금 수요가 높다고 해 이자율이 올라가는 일은 일어날 수 없게 돼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국제금리의 두배에 달하는 고금리에 시달리고 있다.순전히 규제 탓이다.어떤 기업이라도 자유롭게 외국 돈을 꿔 들여올 수 있게 해야 한다.그러면 금리는 내려가고 만다.

이렇게 되면 국내 금융기관은 모두 쓰러진다는 강박관념이 대두한다.금융기관을 살릴 수만 있다면 재벌을 포함해 제한 없이 경영권을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정리해고도 광범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한다.금융개혁은 이 방향에 조준해야 할 것이다.

경상국제수지의 균형 달성은 경제정책의 급박한 목표 가운데 하나다.만성적 적자를 보이고 있는 동안 외국자본은 또 하나의 생산요소라고 볼 수 있다.여기에는 이자율 외에 환율 상승분이 별도 비용으로 추가된다.국제적 자본 이동이 완전히

자유화된 상태에선 비교적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의 중앙은행은 이자율을 금융정책의 지표로 삼을 수 없을 것이다.금리는 국내가 아닌 국제금융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그 대신 경상적자 갭을 해소하는 매개변수 역할을 하는 환율을 금융 정책의 중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달러 환율은 경상수지 적자가 어떤 정한 목표선으로 내려갈 때까지 올라가도록 자유 시장 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그 사이에 고비용 요인의 점차적 감소도 수출 경쟁력의 회복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환율 변동이 경상수지적자를 조정하는 신호도 되고 엔진도 되게 하기 위해선 현행 시장평균환율제도는 부적절하다.

올해 목표로 정해 놓은 자유변동환율제로의 신속한 이행(移行)이 바람직하다.다만 급격한 외환 투기 충격을 피하기 위해선 중앙은행이 외국으로부터 충분한 외환을 미리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 강위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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