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점령군, 포로 대하듯 그런 대화엔 못 응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민과 함께 만든 민주주의의 후퇴와 인권 침해를 막 는 투쟁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25일 “민주당은 성탄을 국회에서 맞는다”며 꺼낸 성탄사였다. 사흘간의 ‘크리스마스 휴전’ 마지막 날 민주당은 대화 가능성을 사실상 접어둔 채 직권상정에 대비해 한나라당과 김형오 국회의장을 향한 각 세우기에 주력했다. 원 원내대표는 “점령군이 포로를 대하듯 법안 처리 시한과 대화 가능 시한을 정해 놓고 주는 기회에는 응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성탄절에도 여야의 대치 상황은 계속됐다. 25일 오전 국회의장실을 점거한 민주당 의원들과 당지도부가 비어 있는 의장석 옆에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원 원내대표는 24일 민주당 문학진 의원 등에 대한 국회사무처의 고발에 발끈했다. 원 원내대표는 “문 의원은 내 지시 아래 입장을 마지막으로 시도하기 위해 해머로 문고리를 뜯었던 것”이라며 “피고발인에 지시자인 원혜영 석 자를 넣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경호권을 불법 가동한 한·미 FTA 상정은 19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 의원들의 노동법 날치기보다 더 도가 지나친 사태”라고 비판했다.

서갑원 원내수석은 “국회 경위·방호원들이 야당 의원들을 사찰하고 있다”며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국회 민원 안내실의 한 방호원이 민주당 의원들의 국회 출입 시간을 기록하다 서 의원의 눈에 띈 게 발단이었다. 서 의원은 “권위주의 시절에 벌어졌던 감시와 정치사찰이 이명박 정권과 김형오 국회의장 체제에서 재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도 각 상임위 점거 현장을 격려 방문했다. 정 대표는 “김 의장은 직권상정 쿼터(할당량)를 넘어섰다”며 “국회 수장이라는 인식 없이 정권의 하수인처럼 하다간 국민의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사흘째 “직권상정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해달라”며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찾았으나 의경들의 제지에 막혀 돌아섰다. 민주당은 김 의장의 직권상정 시점을 30일 전후로 보고 있다. 극적 반전이 없다면 민주당은 본회의장 점거에 나설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직권상정의 전 단계인 심사기일 지정이 (점거 돌입)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장혁·김경진 기자 ,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