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강사’로 나선 결혼 이주 여성 잠자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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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3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구로 6동 동구로초등학교(교장 박찬원) 6학년 6반 교실.

이 학급 어린이 30명은 일일강사인 아마노바 잠자골(40·카자흐스탄 출신·사진)의 시범수업을 40분에 걸쳐 받았다. 8년 전 한국인과 결혼해 지금 서울 하월곡동에 살고 있는 그는 보조강사 임행심씨(32)의 도움을 받으며 능숙한 한국말로 수업을 진행했다.

“귤이 나지 않는 카자흐스탄에선 어렸을 때 성탄절에 귤을 선물받으면 무척 기뻐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귤을 아무 때나 흔하게 먹을 수 있으니 참 좋아요.”

잠자골은 미리 준비한 A4용지 4쪽 분량의 교재와 TV 모니터를 통해 카자흐스탄의 전통 가옥인 유르타를 비롯, 국기·지리·문화 등을 설명했다. 반장 이준섭(13) 군은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성탄절을 앞두고 한국 어린이들에게 ‘지식 나눔 봉사’를 한 잠자골은 한국에 살던 증조부가 러시아 연해주를 거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슬픈 가족사’를 가진 고려인 후손이다. 카자흐스탄 국제관계세계언어대학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중·고등학교 독일어 교사로 일했다. 그는 러시아어까지 4개 국어를 구사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받아 3개월 과정으로 9월 개설한 ‘제1회 다문화 강사 양성과정(수강생 30명)’을 수료했다.

잠자골은 거액의 운송비(약 100만원)를 들여 카자흐스탄 친정에서 민속 의상을 가져와 이날 수업 때 입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 어린이들은 똑똑하긴 하지만 공부에 너무 시달리는 것 같아 불쌍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송수현 인력양성팀장은 “우리 사회가 거주 이주민 100여만 명의 다문화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학생들에게 다문화 가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처음으로 다문화 전문강사를 배출했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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