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망해도 업주는 산다에 철퇴 - 검찰, 정태수씨 一家 전재산 몰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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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서(水西)택지 특혜 분양사건과 그룹의 법정관리에도 끄떡 않고 오뚝이처럼 재기했던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총회장이 이번엔 재산을 모두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검찰이“鄭씨 일가의 전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겠다”며 개인 비리에 대해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한보사건 재수사에 나선 검찰이 가장 먼저 鄭씨 일가의 개인비리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지난번 수사 이후 세간에 나돌던'정부및 검찰과 정태수 일가의 묵계설'을 말끔히 씻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또 鄭씨 일가의 개인 재산을 파헤치면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입을 열 것이란 검찰의 계산도 깔려 있는 셈이다.

지난번 수사때 검찰은 鄭총회장이 은행 대출금중 2천1백36억원을 빼돌렸으나 이중 개인용도로 쓴 것은 ▶부동산 구입자금 78억원▶개인 세금납부 1백51억원▶전처 위자료 40억원등 겨우 2백71억원밖에 안된다고 발표했다.이 때문에 세간에는“천문학적인 대출금을 자기돈처럼 쓴 鄭씨가 개인재산을 그것밖에 안 챙겼겠느냐”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검찰이 鄭씨로부터 뇌물을 건넨 정치인등의 명단을 자백받기 위해 개인비리에 대해선 눈을 감아줬다는 말마저 나돌았다.

당시 검찰 관계자도“짧은 기간에 수사를 하기 위해 鄭씨의 진술에 의존하다 보니 정작 이 사건의 주범인 鄭씨의 비리에 대해선 손 댈 시간이 없었다”며 수사 미진을 시인했다.

개인재산은 빼앗기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 鄭씨는 구속되기 전 네 아들에게“걱정하지 말아라.너희들 먹고 살 것은 내가 챙겨놨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신임 심재륜(沈在淪)중수부장은 취임 직후부터“천문학적 횡령 규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허탈감이 큰데다 이번 사건으로 구속된 정치인등에 비해 鄭씨 일가는 지나치게 온정적으로 처리됐다”며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에 새로 밝혀진 鄭씨 일가의 은닉 재산 추적은 세무공무원 출신의 의정부지청 노관규(盧官圭)검사가 주도했다.盧검사는 鄭씨 일가의 숨겨진 재산을 샅샅이 찾아내는 한편 노무비등을 과대 계상해 세금을 포탈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조치로 鄭씨 일가는 무일푼이 될게 분명하다.밝혀낸 보유재산은 3천4백44억원인데 비해 추징가능 세금이 4천3백27억원으로 세금을 내고나면 한푼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게다가 검찰은 鄭씨 일가의 숨겨진 재산에 대해서도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검찰이 鄭씨 일가의 재산을 환수키로 한 것은 악덕 경제사범 수사의 한 선례가 돼'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산다'는 악습을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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