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테네로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테네로 가는 길
한태규 지음, 민음사, 265쪽, 1만5000원

또 그리스 얘기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리스만한 ‘화수분’이 또 있을까 싶다. 서구 전통에 기반을 둔 세계화. 지금의 우리는 싫든 좋든 바로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렇고 자본주의가 그렇다. 그뿐이랴. 우리의 추억 속에 빼곡히 들어찬 대중문화를 보라. 학계는 또 어떤가. 뭔가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그리스와 만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스대사를 지낸 한태규 외교안보연구원장의 『아테네로 가는 길』도 이러한 맥락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그리스에 첫발을 내디딘 저자는 실망한다. 온통 돌과 바위뿐인 아테네. 정 붙일 곳 없는 벌판. 먼지가 날리는 건조한 기후. 그리스대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저자는 아테네를 애써 잊고 지냈다. 그러던 중 이집트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차이를 발견한다. 절대권력의 위엄으로 가득 찬 이집트에 비해 그리스 유적은 얼마나 민중적인가. 야외극장·스타디움·아고라 등 모두 일반 시민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깨달음. 그제서야 저자는 세계 역사를 관통하는 그리스 전통에 눈을 돌린다. 그리고 유적 하나 하나를 둘러보며 그 의미를 캐내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게 된 셈이다.

저자는 그리스 신화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신화와 역사를 연결한다. 이런 식이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평화의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인간의 질문에 대한 신의 메시지, 이른바 신탁에 의해 시작됐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은 일종의 합의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에 시작해,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이교도들의 종교 행사라 하여 금지할 때까지 117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중지된 적이 없다. 올림픽 기간에는 반드시 ‘휴전’ 약속이 이행됐다. 전쟁으로 올림픽을 걸렀던 현대 국제사회, 테러 위협에 휩싸인 2004 아테네 올림픽이 절로 떠오르는 부분이다.

시민에 의한 시민의 지배를 가능케 했던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다룬 부분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자연스레 토론문화를 발전시킨 터를 둘러보며 현실을 떠올린다. 대중지배의 맹점을 지적했던 고대 철학자들을 생각하며 간접민주주의와 현명한 지도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하나 짚어가면 황량하기만 했던 돌무더기들이 의미를 찾아간다.

강인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