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수사팀으론 의혹 못씻는다 판단 - 고건 총리 한보 재수사 지시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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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건(高建)총리가 18일 한보사건과 관련해 최상엽(崔相曄)법무장관에게'국민들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노력을 기울이라'고 사실상 재수사 지시를 내림으로써 검찰 내부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수사가 종결돼 이미 재판까지 진행되는 사건을 한달도 안돼 재수사하는 것도 곤혹스런 일이지만 高총리가'필요한 조치'도 함께 주문해 수사팀 교체등 인사까지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高총리 발언은 무엇보다 한보사건에 대한 수사종결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이 한이헌(韓利憲).이석채(李錫采)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대출 개입사실을 첫 공판에서야 뒤늦게 공개,소극적 수사였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또 이원종(李源宗)전 정무수석의 인척인 신한국당 김명윤(金命潤)고문의 이름이 첫 공판때 등장,민주계 실세들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이 번져가고 있다는 것도 현정권에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수사초기부터 이름이 거론됐던 대선 주자들의 경우도 검찰은 수사초기부터“정치자금은 수사대상이 아니다”는 논리로 조사를 외면해 이들의 관련 가능성도 여전히 잠재해 있는 상태다.

공판과정에서 홍인길(洪仁吉)의원이 한보로부터 받은 10억원을 지구당 운영비등 정치자금으로 모두 썼다고 밝혔듯이 우리나라 정치상황에서 정치자금과 뇌물의 구분은 모호하다.따라서 재야 법조계등에선 검찰이 액수가 적다거나 혹은 정태수(鄭

泰守)한보 총회장이 정치자금이라고 진술했다는 이유로 자의적 선택에 따라 정치인을 수사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高총리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검찰이 재수사에 나선다면 수사팀의 교체와 보강등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보사건 수사를 맡았던 대검 중앙수사부의 주요 인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선 재수사에 성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이 사건의 재수사가 이뤄지려면 최소한'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와 같은 한시적 수사기구를

만드는등 수사팀의 면모를 바꾸는 방안이 우선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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