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 임원들, 회사 인건비 줄이기 主타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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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달 사표내고 회사를 떠난 쌍용자동차 K전무는“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주변의 질문에“잠시 해외여행이나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가족과 함께 해외에 나가니 아마 연락이 어려울 것”이라며 회사에서 오는 전화를 사절했다.그러나 그는 해외에 나가지 않고 국내에 머무르며 새출발을 준비중이다.

이 회사는 어려운 경영여건을 타개하기 위해 감량경영이 불가피하다며 K전무를 포함한 12명의 임원을 내보냈다.전체임원 40명중 30%가 회사를 떠난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위에서 많이 줄여야 직원들도 감량에 대한 반발이 적어진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이 회사는 임원감축후 부장급이하 직원 3백여명이 영업직으로 발령났으며 퇴사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해 임원 퇴직자가 한명도 없었다.그러나 올해는 10명의 임원이 회사를 떠났다.지난해 발탁승진으로 이사보가 됐던 한 임원은 1년도 못채우고 퇴직하는 불운을 맛봤다.그는“임원으로 진급하지 않는게 오히려 나을 뻔했다”고 한숨을 쉬었다.반면 올해 승진한 K이사보는 “10명의 선배가 떠나간 자리에 앉아보니 마치 가시방석같다”며 “후배들도'언제 나갈지 모르는 선배'로 보는지 전보다 잘 따르지 않는 것같아 섭섭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주요 그룹마다 경기악화를 반영해 임직원,특히 인건비가 많은 임원들을 최소화하고 있다.새로 뜨는 별도 많지만 지는 별이 훨씬 많은게 요즘 기업체 임원들의 현실이다.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은 올 정기인사에서 약1백명 가량의 임원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으며,선경과 쌍용은 30여명의 임원이 퇴직했다.퇴직한 임원은 대부분의 그룹에서 지난해보다 10~30여명 가량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신규 임원승진자는 크게 줄었다.삼성이 지난해보다 51명 줄었고 LG 47명,대우 43명,선경 11명,현대 9명,쌍용 7명이 각각 적었다.

그뿐 아니다.지난달부터 본격화된 주총에서도 많은 별(임원)들이 소리없이 사라지고 있다.

인원감축과 함께 임원들에 대한 혜택도 대폭 삭감되고 있다.진로그룹은 지난달 전무급이하 임원 20여명(영업직 제외)에 대해 그동안 무상제공해온 차량을 반납받았다.타던 차를 원하는 임원에게는 중고차 시세로 불하했다.

LG건설 A상무는 최근 감축과 함께 임원들에 대한 혜택도 대폭 삭감되고 있다.진로그룹은 지난달 전무급이하 임원 20여명(영업직 제외)에 대해 그동안 무상제공해온 차량을 반납받았다.타던 차를 원하는 임원에게는 중고차 시세로 불하했다

.휴대폰도 영업직 임원을 빼곤 전부 회수해 공용으로 사용토록 했다.전무급 이하 임원들은 올해 상여금이 7백%에서 6백%로 줄었다.

LG건설 A상무는 최근 동남아 출장을 가면서 김포공항까지 버스를 탔고 비행기도 3등석에 앉았다.지난해만 해도 그는 자신의 전용차량을 탔고,비행기도 2등석을 타고 편안하게 해외출장을 다녀왔다.LG반도체는 해외출장시 전무이상은 1등석

에서 2등석으로,상무이하는 2등석에서 3등석으로 자리를 낮췄다.

봄이 되니 훈풍이 올법한데 임원에게는 삭풍이 여전한 것이다.(임원수를)줄이고 (허리띠를)죄고 (실적을)재촉하는 바람에 임원들은 이제'임시직원'의 줄임말이 돼버렸다는 소리도 있다.

아남그룹 B이사는 최근 여직원에게 골프부킹을 시키고 임원들끼리 골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가 윗사람에게 혼났다.골프는 칠수 있지만 회사안에서 골프와 관련된 대화나 부킹은 정신이 해이해진다는 이유로 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이 회사 전용차량은 부사장 이상에게만 지급된다.그것도 웬만하면 손수 운전해야 한다.전무급 이하는 자신의 차를 직접 끌고나가 일을 본다.근무시간중 특별한 일없이 장시간 자리를 비우면 그것도 경고대상이 된다.임원이 마냥 좋기만 하던 시절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박영수.이원호.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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