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산책] 淸나라 體位라?

중앙일보

입력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얼마전 '관객 200만 돌파'라는 기사가 났던 '미인도'를 감상했지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미인도'에선 조선의 화가 신윤복이 여성으로 나옵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신윤복의 동생인 윤정이
자살한 오빠 윤복의 삶을 대신해 살아가는 식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과감한 노출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와 관련 영화팬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름답다'에서 '야동 찍으려 한거냐'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헌데 저는 유독 영화의 한 대목에 '필'이 꽂힙니다.
바로 신윤복이 기방에 가 '청나라 체위' 감상하는 장면입니다.

여러 한량들과 기생들을 모아 놓고
무대에 오른 두 여인이 음악이 맞춰 갖가지 기기묘묘한 포즈를 잡고 있는데,

늙수그레한 한 놈팽이가
포즈가 바뀔 때 마다 해설을 결들여
바로 '청나라 체위 몇 쪽'이라고 일갈하는 장면입니다.

왜 하필 청나라 체위라고 했을까.
이왕이면 '아라비안 체위'나 '무슨 서역식 체위'라고 해도 그럴싸 했을텐데...

글쎄,
영화감독 생각엔 조선시대 선진국이 청나라니,
체위 또한 청나라 것이 선진 체위라고 해서 내세운 게 아닐까 싶더군요.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청나라 체위'란 말이 맴을 돕니다.
(장면이 아니라 '청나라 체위 몇 쪽'하는 그 말을 언급하는 것임에 혼동 없으시길...)

혹시 우리들 삶에도 이제는 은연중 중국제가 '저급'의 탈을 벗어던지며,
'고급' 또는 '선진' 등의 이미지를 갖고 다가서는 전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지요.

물론 '웬걸 무슨 말씀이냐' 하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이 친구가 중국문제에 관심이 있다 보니 별걸 다 연결짓는다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나 최근 갈수록 숨이 팍팍 막혀가는 경제사정 감안하면,
중국보다 잘 살았던 시대도 서서히 저물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쓸쓸한 마음과 함께 이런 생각이 가슴 한 구석을 파고 드는 것 같습니다.

최근 주한 중국대사관은 본국에서 오는 대표단 맞이로 정신없이 바쁜 모양입니다.

베이징올림픽 때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방문단이 오는 것도 이유가 되지만,
요즘처럼 좋은 환율을 맞아 한국에 가는 게 무척이나 이득이 된다는 점도 작용했겠지요.

아무튼 와서 푸짐하게들 쓰구나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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