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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10년’ 서 배운다 … 요즘 일본기업 공격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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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 가전업체 샤프와 소니가 합작한 액정 디스플레이(LCD) TV 공장 건설현장인 오사카(大阪)만. 대형 크레인들이 굉음을 내며 건설자재들을 분주히 옮기고 있다. 2010년부터 연간 1300만 개의 LCD TV를 생산하려는 계획을 맞추기 위해서다.

샤프·소니 현장에서 멀지 않은 파나소닉 플라스마 TV 공장 건설현장도 불황과는 거리가 멀다. 내년부터 하루 1200만 대를 생산하는 플라스마 TV 공장(투자규모 29억 달러)을 짓기 위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주변에 위치한 산요전자의 공장 두 곳도 증설 공사에 여념이 없다. 노트북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능력을 늘리기 위해서다.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로 이 지역 건설경기는 활황이다. TV용 평판 디스플레이 공장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오사카만은 ‘패널 베이(Panel Bay)’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가노 노부유키(菅野信行) 샤프 사장은 “투자는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남들이 투자를 꺼릴 때가 우리가 앞서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산요전자 대변인 마키노 구미코(牧野久美子)는 “만약 우리가 투자하지 않는다면 경쟁업체들이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라며 “매출이 완전히 제로가 되기 전까지는 투자를 계속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들이 ‘잃어버린 10년(1990~2000년의 일본 경제 침체기)’의 아픈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기 침체 속에서도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1일 보도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불황에 움츠러들어 투자를 중단했다. 돈 있는 기업들도 금고에 돈을 쌓아둔 채 내핍 경영을 했다. 반면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전자·조선업체들은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일본 기업의 빈 자리를 메웠다.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난 2000년 이후 일본 기업들이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으려 했으나 한번 빼앗긴 시장을 되찾기는 힘들었다.

이런 경험이 일본 주요 기업의 투자를 지속하게 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올해 일본의 10대 투자 상위 기업 중 7개가 지난해보다 투자를 늘렸다. 세계은행이 9일 일본의 올해 성장률(마이너스 0.5%)이 지난해보다 뒷걸음칠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로 경제가 암울한데도 당초 계획을 고수한 것이다. 철강업계도 올 투자를 지난해보다 11.7% 늘린다는 계획을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 철강 수요가 가파르게 줄고 있으나 미래를 위한 투자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최대인 신일본제철은 오이타(大分) 제철소 생산 능력을 늘리기 위해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10% 늘어난 3400억 엔(약 5조원)으로 잡았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서울=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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