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땅’ 일리노이엔 정치 부패 DNA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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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일리노이 주는 ‘링컨의 땅(Land of Lincoln)’으로 불린다. 미국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정치적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곳 자동차 번호판엔 이 말이 적혀 있고, 링컨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 그런 일리노이는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당선인인 버락 오바마를 배출했다. 오바마는 2007년 링컨 마을이 있는 주도(州都) 스프링필드에서 대선 출사표를 던졌고, 일리노이의 대표 도시 시카고에서 승리 연설을 했다.

일리노이는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졌지만, 한편으론 ‘부패의 DNA’도 갖고 있다. 오바마가 내놓은 상원의원직을 돈 받고 팔려고 했던 로드 블라고예비치 일리노이 주지사를 기소한 패트릭 피츠제럴드 연방검사가 “링컨이 무덤에서 돌아누울 정도”라고 말했지만, 그 못지않은 정치인의 부패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복역 중인 조지 라이언 전 주지사(1999∼2003 재임)는 주 내무장관 시절 자격 없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뇌물을 받고 운전면허를 내준 사실 등이 적발돼 징역 6년6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주지사 시절 사형제에 반대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지만, 뒤편으로는 로비스트와 한통속이 돼 주 정부 발주 사업을 넘기고 대가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참전 용사였던 댄 워커 전 주지사(1973∼77)는 금융사기죄, 오토 커너 전 주지사(1961∼68)는 뇌물수수죄와 위증죄 등으로 옥살이를 했다. 일리노이 주 국무장관을 하다 70년 사망한 폴 파월이 평소 쓰던 호텔 방 금고와 신발상자에는 현금 80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시카고 시장 출신 중에도 악명 높은 이들이 있다. 윌리엄 헤일 톰슨(1915∼23, 1927∼31)은 마피아의 보스 알카포네와 손을 잡고 이권사업으로 돈을 벌었다. 그가 31년 낙선하자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은 “톰슨은 더러움과 부패, 외설과 어리석음, 그리고 파탄의 대명사”라고 통렬히 지적하는 사설을 썼다. 그가 사망한 뒤 금고에선 현금 150만 달러가 나왔다.

리처드 데일리 현 시장의 아버지 리처드 J 데일리는 21년간 시장을 하면서 선거자금을 내는 사람들에게 특혜 주는 걸 제도화했다. 그는 기소되지 않았지만 그 밑에 있던 고위직 여러 명이 감옥에 갔다.

이 밖에 94년 우편사기, 유령인물을 내세워 의회 봉급 타기 등의 범죄를 저질러 연방하원 세입위원장직과 의원직을 사퇴한 대니얼 로츠텐코스키도 일리노이 출신이다. 시카고 선 타임스에 따르면 72~2006년 9월 주지사 세 명을 비롯해 주와 시카고, 쿡 카운티 정부 및 의회의 고위 관계자 79명이 부패 범죄로 유죄를 받았다.

일리노이가 정치인 부패의 온상이 된 건 정치와 행정에 돈과 흥정이 개입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로욜라 대학 로버트 롬바르도(사회학) 교수는 11일 MSMBC와의 인터뷰에서 “일리노이에선 주 정부와 의회 고위직이 자신을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나 이권을 주는 시스템이 조직화돼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 같은 부패는 19세기 말 도박·매춘업으로 돈을 벌어 시카고 지역에서 민주당의 대부가 된 마이클 캐시우스 맥도널드에게서 비롯됐다.

맥도널드는 당시 ‘왕(King)’으로 불렸다. 지역의 돈과 권력을 손에 쥐었기 때문에 출세욕에 눈이 먼 사람들은 그에게 몰렸다. 그가 세운 ‘더 스토어(The Store)’라는 도박장은 공직 매매, 이권 거래, 정경유착의 장소였다. 시카고 고위직 인선과 시의 사업 등은 이곳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비공식 시청’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맥도널드 덕분에 출세한 이들은 돈과 이권의 상납으로 보답했고, 그들은 자리와 정부 사업을 팔아 축재했다. 이런 부패 시스템은 맥도널드의 전례를 따르려는 이들에 의해 나날이 발전했고, 리처드 J 데일리 때 깊게 뿌리내렸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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