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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시대>9.초원위의 내집에서 살고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아련한 기억속에 들리는 70년대 한 유행가 가사가 이즈음 도시인들의 현실로 되살아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게 마련인 것.산업화와 함께'도시로 서울로'란 아우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건만 이제는 그 바람도 한풀 꺾이고 바야흐로 탈서울.탈도시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자녀들의 교육문제등으로 비록 도시를 떠나지는 못해도 마음만은 전원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도심을 전원처럼 꾸미려는 노력과 아파트보다는 주택을 선호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3년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경기도양평에 둥지를 새로 마련했어요.처음엔 아득하고 갑갑하기도 했지만 이젠'서울와 살아주세요'라고 누가 부탁을 해도 못할 것 같아요.”(신영수.44.경기도양평군서종면.버섯재배)

“땅값 비싼 서울에 사느니 출퇴근 좀 불편하더라도 흙냄새 나는 곳에서 살고 싶어 지난해 전원주택을 마련했죠.물론 불편한게 없진 않지만 하늘 한번 쳐다보고 살지 못한 도시생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어요.”(김현태.35.경기도이천군설성면.회사원)

도시가 싫어 탈도시를 선택하는 역류현상은 통계상으로도 만만찮다.지난달 농림부 발표에 따르면 90년 이후 도시에서 살다 시골로 옮겨간 귀농농가가 3천7백39가구로 나타났다.이전 한해평균 10여가구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적인

증가추세다.

90년 이후의 귀농가구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90년 3백71가구였던 것이 93년과 94년 각각 6백18가구,6백62가구로 증가했으며 95년에는 1천가구에 육박하고 있을 정도다.

농촌으로 되돌아간 가구의 가장 나이를 보면 30대가 전체의 43.8%(1천6백80가구)로 가장 많고 40대가 22.8%(8백51가구),50대 16.3%(6백13가구)순으로 젊은 가장들의 탈도시가 두드러진다.

도시를 떠나 아예 직업까지 농업으로 바꾸는 경우 외에도 직장은 도시에 두고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에따라 주택업계에도 요즘 80년대 아파트붐에 버금가는 전원주택 열기가 일고 있다.

대우.벽산.갑을등 대형건설업체들이 앞다퉈 전원주택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경기도양평군과 경남창원시등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나서 전원주택단지 조성에 앞장설 정도다.

지난해 9월 주택산업연구원이 수도권 주민 8백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은퇴후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란 질문에 '도시주변의 전원주택으로 가겠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82%에 달했으며 이유는'공기가 맑고 주변환경이 좋아서(62%)''각박한 도시가 싫어서(24.2%)'를 꼽았다.

길당컨설팅의 진수성(陳洙聖)대표는“90년 이후 시작된 전원주택바람이 95년부터 준농림지의 등장으로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추세”라며“지대가 비싸고 각박한 도시보다는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어 앞으로 전원주택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도시내에서도 아파트보다 주택을,고층아파트보다는 저층형 또는 전원형 아파트에 살고 싶은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제일기획이 전국소비자 6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라이프스타일 조사에서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사람이 53%를 차지해 오랫동안 지속된 아파트 선호세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또 주택산업연구원 설문에서도'아파트에 살고 싶다(46.4%)''단독주택에 살고 싶다(46%)'가 서로 비슷한 선호도를 나타냈다.

한때 고층아파트에 기세가 밀리던 저층아파트도 전원개념을 결합해 새롭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지난해 10월 대한주택공사가 경기도 기흥.영덕지구및 상갈지구에 4층 이하의 전원형 공동주택으로 세우기로 한 것을 시작,대형민간업체들도 앞다퉈 전원형 저층아파트 건축을 계획중이다.

건국대 강순주(姜淳柱.소비자주거학과)교수는“성장위주의 시대엔 편리성과 기능성이 강조돼 아파트의 인기가 높았지만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여유가 생김에 따라 전원주택 또는 저층.전원형아파트에 관심을 갖게 된다”며“이는 주택의

기능성.편리성에다 환경의 개념까지 중시되는 최근 추세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맞아 떨어져 일어나는 현상”으로 풀이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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