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이기는작은영웅들>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 문재식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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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文사장,왜 하필이면 보스니아에 들어가려 하십니까.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감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96년 2월23일 내전이 한창이던 보스니아 국경.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의 문재식(文在植.42.사진)사장과 현대종합상사 크로아티아지사의 조운(趙雲)지사장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趙지사장은 그러나“시장을 개척하자면 때론 위험을 무릅써야할 때도 있다”며 文사장 뜻에 동의했다.보스니아는 살벌했다.총탄이 승용차 옆을 스치고 곳곳에서 포성이 이어졌다.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를 떠난지 6시간만에 보스니아 북부도시

투즐라에 도착했다.

文사장을 만난 현지 파트너는“당신 정말 독종이다.이 정도의 열성이라면 뭘 못믿겠느냐”며 흔쾌히 2대의 기계 구입 계약서에 사인했다.

文사장이 개발한 기계(슈퍼아스텐 쿡)는 폐(廢)아스팔트를 도로굴착현장에서 곧바로 재생하는 세계 최초의 장비.폐아스팔트를 이 기계에 넣으면 18분만에 새 아스팔트로 변한다.폐아스팔트 수거및 폐기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더러 폐아스팔트

에서 나오는 기름덩어리로 인한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다.

文사장은 보스니아 국경을 넘은 정신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해왔다.

미국.일본.호주등 선진국은 물론 태국.헝가리등 세계 18개국에'슈퍼아스텐 쿡'을 팔고 있다.지난해 2백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고 올해 들어서도 이미 1천2백만달러의 오더를 받아둔 상태.

슈퍼아스텐 쿡 개발과정은 눈물의 연속이었다.91년부터 4년 이상 서울 뚝섬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직원 7명과 숙식을 함께 하며 한겨울 강바람도 마다않고 폐아스팔트를 부수고 굽는 작업을 수백차례 계속했다.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많

았다.어떤 일이 있어도 직원들의 월급만은 줘야 한다는 생각에 결혼 패물을 들고 전당포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단다.

75년 광주 조선공업전문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부터 피혁장사.엔지니어링회사 직원까지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자수성가한 탓에 文사장은 사회의'음지'를 보살피는데도 남다른 열정을 보인다.자금난에 허덕이면서도 91년부터 양로

원.고아원등을 매월 한차례 이상은 꼭 방문해 난방비.용돈등을 전달하고 1년에 두번은 큰 잔치를 벌인다.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장애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文사장은 최근 서울시민을 위한 또하나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서울시가 여의도광장 공원화사업을 시행할때 나오는 폐아스팔트 50만을 무료로 처리해주겠다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서울시는 처리비용 1백10억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文사장은“1백10억원의 돈은 결국 서울시민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서울시민의 휴식공간 마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사진설명>

한국아스텐의 문재식 사장이 폐아스팔트를 도로 굴착 현장에서

재생하는'슈퍼아스텐 쿡'장비를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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