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학대 수용소 불도저로 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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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추락하는 지지도를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4일 펜실베이니아의 미 육군 전쟁대학에서 미국의 향후 이라크 정책에 대해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되고 있는데 대통령은 뭘 하고 있는 거냐"는 비난이 빗발치는 가운데 이를 무마하려고 국민 앞에 나선 것이다.

33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해 5단계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6월 30일에 이라크 과도정부에 주권을 분명히 이양할 것이며, 그 후 과도정부 치하의 이라크에서 치안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미군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이라크에 간 것은 미국의 안보 때문이지 이라크를 점령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면서 "이라크인을 미국인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며 분명히 정권을 넘기겠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병원.학교.도로 등 이라크 재건사업을 강력히 추진할 테니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국제사회도 많이 도우라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내년 1월의 총선거를 통해 이라크에 민주적인 정부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이날 밝힌 5단계 조치는 이미 다 알려진 내용들을 반복한 것에 불과했다.

다만 5단계 조치를 설명하면서 "이라크 정부가 원한다면 사담 후세인 정권의 폭정의 상징이었고, 미군들도 잘못을 저지른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겠다"고 한 것과 "이라크 주둔 미군을 줄이지 않고 13만8000명 정도로 유지하겠다" "필요하면 좀 더 파병하겠다"고 말한 것 정도가 새로운 내용이다.

부시 대통령이 좀 겸손해진 측면은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앞날이 험난할 것이며 때로는 혼돈상태로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국민의 기대치를 낮췄고, 유엔과 동맹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이날 연설이 이라크 사태에 대한 미 유권자들의 불만과 불안을 해소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현재로선 이라크 과도정부를 예정대로 6월 말까지 구성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대사는 "부시 대통령은 동맹국들의 마음을 너무 상하게 했기 때문에 이들이 미국을 도와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회의를 표시했다.

이날 공개된 CBS의 여론조사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도가 41%, 반대가 52%였다. 이라크 정책에 대한 지지는 30%에 불과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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