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한미군 역할변경 사전협의 거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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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찰스 캠벨 주한 미8군 사령관이 어제 "주한미군의 작전 범위는 동북아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을 기존의 대북 억지력 확보에 국한하지 않고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맡기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북한의 전쟁 억지력 임무를 띠던 주한미군의 역할이 보다 광범위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상반된 의미를 가진다. 우리로서는 대 북한 억지력이 더 급한데 미국은 북한문제보다는 좀더 넓은 시각에서 주한미군을 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과거부터 자신의 세계전략 구도 하에서 주한미군을 보아 왔고 이번에도 새로운 전략 변경으로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번 캠벨 사령관의 발언으로 그런 상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온 것이다.

우리의 안보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이제 미국의 역할이 북한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유지라는 임무를 띠는 만큼 기존의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이런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군이 동북아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미군의 역할 변화에 따라 주변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등 새롭게 제기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정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검토를 사전에 끝냈는지도 의문이고, 그러한 중요한 변화가 왜 주한미8군 사령관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왔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미군 관계자가 밝히고 우리 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몰랐다면 한.미관계에 그야말로 적신호가 울린 것이고, 알고도 그냥 지나쳤다면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이 사안을 사전에 알았는지와 이런 변화에 대한 정부 입장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

큰 틀로 볼 때 주한미군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은 필요하다.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역할은 한반도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주한미군의 바람직한 위상을 포함해 한.미동맹의 발전적 대안을 마련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