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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만 5공 틀에 가둘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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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시계를 되돌려 20여 년 전으로 가자. 그때는 도서관마다 1층에 신문 열람대가 있었다. 공부하다 지친 사람들은 신문을 보며 머리를 식혔다. 신문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리곽에 넣어 열람시키는 곳도 있었다. 신문은 뉴스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정보와 오락거리를 제공하였다.

요즘 도서관에는 컴퓨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뉴스를 접하고, 정보를 찾고, 재미를 얻는다. 과거 모든 정보는 신문으로 통하였지만, 이제 모든 정보는 인터넷으로 통한다.

미디어 환경은 급변하고 있는데, 방송 소유 규제는 20년 이상 그대로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한 것이 1980년 강압적인 언론 통폐합에서 시작되었다는 원초적 불의에 눈감고, 방송법이 제정되던 87년과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외면하고, 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선진국이 방송의 소유 규제를 완화한 소식에 귀 막은 결과다.

최근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 법률 개정안을 내놓은 것은 늦었지만 적절한 일이다. 보완되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미디어 환경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신문 대기업 외국자본의 방송진출을 허용한다는 것이고, 특히 신문사가 지상파 방송사 주식의 20%까지 소유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일부에서는 현 정부에 우호적인 신문사에 대한 특혜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신문사의 방송진출은 특혜가 아니라 차별대우의 시정이다. 신문사와 대기업은 다른 기업과 달리 방송진출이 전면 금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시정하는 것은 다른 기업과 동일한 지위를 되찾아주는 것이다.

그동안 차별의 논거는 여론 독과점 방지에 있었다. 신문이 여론을 지배하던 시절, 경제규모가 크지 않던 시절, 이 논거는 충분히 일리 있는 것이었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차별대우의 필요성을 재검토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본다. 특혜는 오히려 방송법이라는 진입장벽을 쌓아놓고 과점의 이익을 누리고 있던 방송사업자와 그 종사자가 누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고, 새로운 미디어가 속출하는 환경에서 국가의 역할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 첫째, 의견 다양성의 확보 방법이 달라야 한다. 국민이 다양한 의견에 접하도록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방송정책의 핵심이다. 다만, 신문과 방송이 정보 취득의 유일한 창구였던 시절과 달리 오늘날 의견 다양성은 미디어 간 경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국민은 여러 미디어에서 정보를 얻고 있으므로 국가는 의견 다양성 관점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공영방송이다.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몇 개의 공영방송 채널이 필요한지,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등이 향후 추진과제다.

두 번째로 국가는 개인의 인격권 보호에 지금보다 더 노력하여야 한다.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은 누구나 자기 의견을 세상을 향해 피력할 기회, 즉 언론의 자유가 과거보다 크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침해, 모욕과 같은 인격권 침해도 급증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댓글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과거와 달리 언론사가 아닌 개인에 의해 벌어지는 인격권 침해 사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새로운 과제다.

언론사가 아니므로 언론중재법을 적용할 수 없으며, 전파의 신속성 때문에 법원에서 해결하기도 어렵다. 결국 인터넷포털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든지, 새로운 분쟁해결기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언론중재법과 정보통신망법을 함께 개정하여야 하는 이유다.

향후 국회에서 논의는 언론의 자유니 여론 다양성이니 하는 총론적 수준을 넘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의견 다양성을 확보하는 구체적인 방안과 인격권 침해를 신속히 구제하는 현실적 방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문재완 한국외대 교수· 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