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자금사정 급속 악화로 신규.해외사업 주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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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기업들이 경영상태가 부실한 해외기업 인수를 자제하고 자금조달 계획이 불투명한 신규사업을 보류하는등 돈쓰는 일을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다.

경기침체.환율변동.한보 부도.정국 불투명등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대외신용도가 떨어져 해외자금 조달도 여의치 않아 기업 자금사정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

특히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으로 해외에서 비교적 싼 값에 돈을 들여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재계는 한보사태등으로 물거품이 됐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들은 경영계획 수정작업에 착수하는등 사업 재원 마련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대우는 최근 환율변동이 심해지자 각 계열사에 가능하면 해외자금을 끌어들이지 말 것을 지시했다.

현대건설은 해외신규사업용 재원 마련을 위해 1억달러 규모의 해외증권을 발행할 예정이었으나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늦추고 있다.

효성.코오롱.해태그룹등은 올해 중점사업으로 금융과 유통.정보통신.의약등 유망업종을 중심으로 창업 또는 인수.합병에 적극 나서기로 했으나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고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대출금리(당좌대출금리 제외)는 평균 연 11.25%로 지난해 12월(연10.94%)보다 0.3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대기업이라도 자금사정이 나쁜 일부 기업은 거래은행들이'요주의 기업'으로 분류하는 바람에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A그룹 자금 담당자는“한보 사태 이후 은행권은 물론 제2금융권의 신규대출도 어려워졌다”며“비상시에 대비해 자금이 생기더라도 대출금을 갚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은 최악이어서 부도 도미노 현상마저 우려되고 있다.

김원태(金元泰)한국은행 자금담당 이사는“전반적으로 시중 자금사정은 괜찮은 편”이라며“그러나 은행장 구속등으로 금융권이 위축돼 있는데다 부실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각 은행이 여신심사를 철저히 하는 바람에 영세중소기업이나 한계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보 부도로 해외차입 금리가 0.1~0.15%포인트 높아지는등 해외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진 것도 문제.이에따라 해외증권 발행을 추진하고 있던 기업들도 발행시기를 늦추고 있다. 〈박의준.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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