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학문·사회활동 꿈 펴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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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 두암타운에 사는 송지현(47·사진)씨는 1인 다역의 수퍼 우먼이다. 국문학 박사이자 시인인 송씨는 모교인 전남대의 언어교육원에서 9년째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조선대에도 출강해 국어 교양과목 ‘삶과 글’을 가르치고 있다. 2남1녀의 어머니이며, 50대 대학교수 남편을 둔 아내 겸 여든이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이기도 하다.

그에게 또 하나의 역할이 더해졌다. 5일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다. 최고령 합격자다. 120명 중 대부분이 20대에서 30대 초반이다. 40대 이상은 송씨를 포함해 세 명에 불과하다.

합격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기쁜 일이지만 마음의 부담 또한 크다”며 “다시 대학원생이 된다는 설렘은 물론, 반짝이는 두뇌와 탄탄한 체력을 지닌 조카뻘 동기생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로스쿨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삶고 싶었다”며 “앞으로의 인생은 관념적 학문 연구보다 실천적 학문 연구와 사회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고 답했다.

국어교육을 전공했던 그는 1991년 페미니즘 비평으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다시 쓰는 여성과 문학’ ‘길 찾기-소설로 보는 여성문제’ 등이 있다. 2003년에는 월간 시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로스쿨 합격이 뜻만 있어 되는 것은 아니다. 입학 경쟁도 매우 치열했다. 지천명(知天命·50세)이 코앞인 나이에 당당히 합격한 비결을 물어봤다.

송씨는 2004년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편입하는 것으로 법 공부를 시작했다. 신문을 열심히 읽고, 폭넓은 독서를 한 것도 도움이 됐다. 영어는 미국 생활을 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해결됐다(그의 토익 점수는 930점이다). 직접적인 로스쿨 시험공부라면 전남대에서 제공하는 로스쿨 동영상 강의와 모의고사,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한 그룹 스터디가 도움이 됐다.

자신을 받아준 대학교 측에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송씨는 “로스쿨 지원 동기를 높이 사 준 것 같다. 지원할 때 가장 두려웠던 게 ‘나이 많은 여자에 대한 편견이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의외로 공정하고 편견 없이 선발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판·검사나 일반 로펌 변호사로 활동할 생각은 없다. 가능하다면 비정부기구(NGO)나 사회적 기업형 법률사무소와 같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그의 이상형은 아름다운 재단에서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다.

같은 꿈을 꾸는 이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진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면 주저하지 마세요. 의욕이 있다면 나이를 개의치 말고 도전하세요.”

한편 전남대에 따르면 법학전문대학원 합격자 120명 가운데 남자가 69명(58%)이고, 여자는 51명이다. 또 송씨 같은 비 법학계열 출신이 75명(62%), 법학계열 출신이 45명(38%)이다. 특히 전체 합격자의 67%가 수도권 대학 출신으로 나타났다. 전북대는 80명 합격자 가운데 수도권출신이 73%(59명)을 차지했으며,전북대 출신은 7명이었다.비 법학계열이 47명(58.8%),법학계열은 33명이었다.

글=천창환·최준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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