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위원장 조금만 더…" 몸 달았던 고이즈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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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22일 평양에서 연 93분간의 정상회담에선 金위원장이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고 일본 언론이 24일 보도했다.

도쿄(東京)신문이 이날 밝힌 정상회담의 뒷얘기에 따르면 金위원장은 회담이 시작된 지 1시간30분이 지나자 "이제 그만 끝냅시다"라며 일어서려 했다. 대북 식량지원 약속이란 선물을 챙긴 뒤였다. 당초 정상회담은 2시간으로 합의됐었다.

다급해진 고이즈미 총리는 "잠시 기다려 달라"며 북한에 있는 탈북 미군 젠킨스의 귀국 문제와 북한에 납치된 뒤 사망한 것으로 발표된 일본인 10명의 안부 문제를 꺼냈다. 젠킨스는 납치됐다가 일본으로 돌아온 여성의 남편으로 미국이 사법처리를 밟겠다고 나설 것을 우려해 일본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

자리를 고쳐앉은 金위원장은 젠킨스를 만나보라고 제안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회담 후 옆방에 와 있던 젠킨스를 만났으나 그는 귀국을 거절했다.

金위원장은 10명의 안부 문제에 대해선 "이미 끝난 이야기"라며 자르려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가족도 나도 살아있다고 믿는다"며 반박했다. 金위원장은 계속 "생존자는 제로"라며 고개를 젓다가 고이즈미 총리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한차례 더 조사하자"고 물러섰다.

납치피해자 가족들은 "납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식량지원만 한 최악의 결과다" "왜 10명의 안부 문제를 더 따지지 않고 빨리 회담을 끝냈느냐"며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야마자키 마사아키(山崎正昭) 관방 부장관도 정상회담이 일찍 끝난 데 대해 "상대방이 주도권을 가졌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과 일본이 지난 22일 열렸던 북.일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북한이 납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인 10명의 생사 확인 등을 재조사하기 위한 협상을 이달 중 개최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讀賣) 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양측이 이미 예비 접촉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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