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1년] 태안 기름유출 … 어선 동승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달 29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항 앞바다에서 20t급 영진호의 선원이 33㎞ 떨어진 먼바다에서 잡아 올린 500여 ㎏의 멸치·물메기·오징어를 정리하고 있다. 5일 만리포해수욕장에서는 자원봉사자와 주민 등 1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서해안 유류 유출 사고 1년(12월 7일) 계기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폭설로 대부분 취소됐다. 김태성 기자

지난달 29일 새벽 4시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항. 항구에 정박해 있던 어선 100여 척은 강풍과 높은 파도에 크게 흔들렸다. 20t급 영진호 선장 이상범(47)씨는 배 위에 불을 밝히고 선원 6명과 함께 출항 준비를 서둘렀다. 영진호에 다가가 “기름 유출 사고 1년(12월 7일)을 앞두고 서해 바다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다”고 승선을 요청했다. 27년째 어선을 몰고 있는 이씨는 “바람이 세 배가 심하게 요동칠 텐데, 견딜 자신이 있으면 타도 좋다”며 승낙했다. 10여 척의 어선도 함께 출항했다.

높이 4∼5m의 파도와 초속 14m의 바람을 뚫고 2시간30분쯤 가자 신진항에서 남서쪽으로 33㎞ 떨어진 어로작업 현장에 도착했다. 항해 중 기름 피해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고 후 항구에서 수십㎞ 떨어진 바다에도 떠다녔다던 타르 덩어리는 자취를 감췄다.

영진호는 그물을 바다에 설치해 두고 매일 새벽에 수산물을 잡아오는 ‘안강망’ 방식의 어로작업을 시작했다. 선원들이 길이 20여m의 그물을 건져 올리자 갑판 위는 순식간에 500여㎏의 멸치·물메기·오징어로 뒤덮였다. 선원 조금석(60)씨는 “요즘은 멸치가 많이 잡힌다”고 귀띔했다. 선장 이씨는 “1년 전 기름띠로 뒤덮여 새까맣던 바다를 돌이켜보면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며 “그때는 적어도 3∼4년 동안 물고기를 구경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름 유출 사고 이전까지 이씨는 한달 평균 6∼7t의 어획량을 올려 매월 2000여만원을 벌었다. 그러나 사고 발생 이후 75일간 조업을 하지 못했다. 수협 어판장은 문을 닫았다. 도매상들도 수산물 매입을 포기했었다.

올해 2월 말 조업이 재개됐지만 1∼2개월간 어획량은 예전의 3분의 1에 불과한 한달 평균 2t에 그쳤다. 요즘은 물고기가 차츰 되돌아오면서 4t가량 잡는다. 이씨는 “사고 전보다 어획량이 30% 이상 준 데다 기름값 인상 등으로 한 달 수입이 1000만원 이하로 줄었다”며 “그나마 기름 유출 후유증이 빨리 사라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산물 경매가 열리는 신진항 수협 위판장도 정상을 되찾고 있었다.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경매에서 영진호는 오징어와 물메기를 한 상자(15㎏ 기준)에 2만5000∼3만원에 팔았다. 정시구 경매팀장은 “어선별로 어획량이 30∼40% 떨어졌지만 사고 직후 상황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나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10월까지 이곳 위판장에서 거래된 수산물은 3309t. 지난해 같은 기간(5677t)에 비해 40% 줄었다. 태안 안강망협회 최규만(58) 회장은 “어로작업 비수기인 겨울이 지나면 신진도항은 완전히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온 국민의 성원이 있었기에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5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기름 피해 해변 바닷물의 총석유계탄화수소(TPH·석유성분) 농도는 기준치(10ppb) 이하인 평균 3ppb였다. 굴의 유해물질(PAHs·석유에 포함된 발암물질) 농도는 48ppb로 사고 이전(2001년 42ppb)과 비슷했다.

태안=김방현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J-Hot]

▶ [한국 CEO 라이프 스타일] 새벽6시 이전 일어나 밤12시 잠자리에

▶ '신의 직장' 잇따른 칼바람…한전, 이사진 전원 사표수리

▶ 월남 노동자 파업에 부총리, 대사에 "옆집女 왜 힐끔?"

▶ [박경모·박성현 커플 러브스토리] "첨엔 여자로 안보여…이상형=44사이즈女"

▶ 전국 부동산 폭락세…유일하게 '이곳'만 올라

▶ 남성의 '샘' 말랐다고 무턱대고 운동하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