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낚시의자 들고 국회 간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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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위 소관부처의 한 공무원은 5일 새 신발을 신고 국회로 출근했다. 구두를 신은 채 사흘째 하루 종일 서 있으려니 발이 너무 아파 고무창이 두툼하게 붙은 건강기능성 신발을 장만했다. 경제부처의 한 예산담당 사무관은 이날 아예 낚시의자를 들고 왔다. 두 살 된 딸의 잠든 얼굴만 본 지 나흘째다.

지난 월요일(1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조정소위가 열리는 국회 본청 638호 앞에는 두 공무원 외에도 각 부처에서 온 40여 명이 항시 ‘스탠바이’ 상태다.

자기 부처의 심의 순서가 곧 돌아올 것 같으면 재빨리 보고해 차관과 차장, 국장이 오도록 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민주당이 저지하고 한나라당이 강행하기를 반복하며 조정소위의 예산심의는 거북이걸음이 됐고 국회에 나온 예산담당관과 국회연락관들은 5일째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여야가 다투는 사이 공무원들이 인질로 잡힌 것이다.

민생법안 과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 대치가 계속되면서 공무원들의 발목이 잡혔다. 5일 공무원들이 국회 로비에서 자기 부처의 심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김상선 기자

4일 오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의 저지를 막을 목적으로 회의장을 점거하며 부처 관계자 50여 명을 회의장 안에 함께 가뒀다.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오후 4시10분에 들어갔다 오후 9시10분에 풀려났다. 5시간 동안 저녁도 먹지 못하고 앉아 있었지만 문화부의 심의 순서는 다음 날로 미뤄졌다. 3일 맨 마지막 차례였던 방위사업청은 오후 10시30분까지 기다렸지만 바로 앞에서 끊겼다. 4일 오후 11시에 시작했지만 “자료가 엉망이다. 내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질책만 듣고 돌아나왔다. 논의 대상인 방사청의 감액사업은 4개였다.

국회사무처 관계자가 4일 밤 “내일 아침 10시부터 전원 대기하라”는 지침을 전달하자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쏟아졌다. “차관한테 혼난다. 차관을 다 불러놓으라는 말이냐”며 읍소하는 공무원도, “사업 1건당 1분씩만 논의해도 1시간이 넘는다. 순서를 정해 달라”며 항의하는 공무원도 보였다. 나흘 내내 아침 8시 서울행 KTX를 타고 출근, 밤 12시에 퇴근하기를 반복했다는 대전 소재 외청의 한 예산담당관은 “오늘은 여관에 가서 자야겠다”며 짐을 챙겨 나갔다.

글=선승혜 정치부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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