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 “우리 스스로 살길 찾아야 … 생산 유연성 늘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유연한 생산체제를 구축하겠다.”

기아자동차 노사는 4일 이런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날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공장에서 열린 경영설명회에서 회사와 노조는 고용안정을 위해 회사 체질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따라 합의문엔 “물량 재배치와 한 라인에서 여러 차종을 생산하는 방식을 통해 물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고 생산라인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현대자동차의 계열사인 기아차의 노조가 생산라인의 유연성을 높이겠다고 합의한 건 전향적이다. 생산라인의 유연성이 부족한 것이 현대·기아차 그룹의 큰 약점으로 꼽혀 왔다. 인력이나 물량 재배치가 쉽지 않다 보니 시장의 움직임에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기아차 노조의 송호창 정책3실장은 “자동차 산업이 위기상황이라 노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아차 노조의 최대 목표는 고용안정이다. 이를 위해 노조는 회사에 대책을 요구하는 대신 자구책을 찾기로 했다. 송 실장은 “고용은 무조건 회사에서만 담보해주는 게 아니다. 노조도 스스로 여러 방안을 찾아야 했고 그중 하나가 유연한 생산체제 구축”이라고 말했다.

이미 기아차 노사는 카니발을 생산하는 소하리 1공장 라인에 프라이드를 투입해 공장 간 물량을 조절하기로 지난달 말 합의한 바 있다. 주문이 밀린 포르테를 스포츠유틸리티차량 라인에서 함께 생산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현대차는 앞서 2일 경영설명회를 열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회사 측은 “위기극복을 위해 노사가 함께하자”고 제안했지만 노조는 “어렵다고만 할 게 아니라 사측이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맞서 뾰족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현대차 노조 장규호 공보부장은 “정리해고는 막아야 한다. 하지만 회사의 내년도 생산 계획이 나온 뒤에야 노조도 고용안정 방안에 관한 입장도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노조집행부와 함께 추진 중인 단종 에쿠스 차종 생산인력의 전환배치도 노조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이 회사는 5일자로 울산2공장 에쿠스 라인에서 근무하던 20명을 제네시스를 생산하는 5공장으로 발령 냈다. 하지만 5공장 사업부위원회는 4일 울산공장에서 집회를 열고 “정년퇴직 때문에 비는 자리에 5공장 조합원을 우선 배치한 뒤에 2공장 인력을 전환배치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한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