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설묘지 만든다” 22억 받아 3년 7개월째 부지도 못 정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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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는 2004년 11월 무안군 일대에 공설묘지를 만든다며 정부에서 22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2005년 말까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모두 102억원을 들여 화장로 7기와 납골당 3만 기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무안군 주민의 반대로 묘지 건설 계획은 무산됐다. 목포시는 2005년 6월 사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부지를 물색 중이다. 그런데도 지난 6월 말까지 3년7개월 동안 보조금을 국고에 반납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공설묘지 조성 사업의 가능성을 검토해 환수 여부를 결정하라”며 최근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게 통보했다.

감사원은 5~7월 40개 지방자치단체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급 실태’를 감사한 결과를 4일 발표했다. 감사 결과 경기도·충남 등 6개 광역단체 소속 자치단체가 2005~2007년에 받은 보조금(연평균 3조8759억원)의 46%인 1조7842억원이 그해에 집행되지 못하고 이듬해로 넘겨졌다. 일부 지자체는 4~5년씩 보조금을 그냥 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재정법상 보조금은 받은 해에 목적에 맞게 지출해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2년간 더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 이후에는 국고로 반납해야 한다.

자치단체들은 사업이 구체화되지 않았는데도 ‘일단 돈부터 확보하자’는 식으로 신청한다. 부처 역시 사업 부지를 확보하지 않거나, 주민 동의와 같은 사전 절차를 밟지 않은 자치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감사원 정경순 자치행정1과장은 “재정 상태가 열악해 국고 보조 없이는 사업을 추진할 수 없는 자치단체들이 무리하게 보조금을 신청한다”며 “중앙 부처도 현지 실사를 하지 않은 채 명확한 기준도 없이 서류만 보고 보조금 지급 대상을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인천시 강화군이 ‘교동 연륙교 건설사업’을 위해 2005년부터 3년 동안 67억원의 보조금을 타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사업비가 30억원 이상이면 투자심사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투자심사 제외 대상 사업’이라는 강화군의 말만 믿고 보조금을 내줬다.

강화군은 보조금을 받은 뒤에야 타당성 조사를 하는 등 절차를 밟아 지난 9월 공사에 들어갔다. 투자심사가 끝날 때까지 2년4개월 동안 보조금은 금고에서 낮잠을 잤다.

강화군은 “군비의 비중이 15%에 불과해 기본 조사 등 초기에 해야 하는 용역 사업에도 국고 보조가 필요해 보조금을 신청했다”며 “감사원에서 기관경고를 받아 내년도 국비보조금을 100억원 요청했으나 20억원만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양주시는 ‘광적 생활체육공원 조성사업’에 필요한 부지 2만3000㎡ 가운데 4500㎡만 확보한 상태에서 전체 부지를 매입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2005년에 9억원을 받아냈다. 양주시는 올 1월에야 부지를 모두 마련했다.

중앙대 박완규(행정학) 교수는 “한정된 재원을 특정 지방자치단체가 차지하고 나면 다른 자치단체가 중요한 사업을 제때 할 수 없게 된다”면서 “지방비를 먼저 확보하고 필요한 절차를 모두 밟은 뒤 보조금을 신청하도록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우 기자

◆국고 보조금=지역 개발이나 주민 복지 등 지방자치단체가 벌이는 사업을 위해 중앙 정부가 지원하는 돈이다. 올해 지급된 보조금 총액은 23조7000억원이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19%다. 자치단체는 보조금에 도비나 군비를 보태 사업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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